ADVERTISEMENT

두차례 탈출하다 잡혀 더 혼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코타바토(비·민다나오도)=이창기특파원】박화춘씨가「코타바토」시「노트르담」병원 응급실에서 밝힌 피납경위와 산속에서의 감금생활, 두차례에 걸친 탈출기도 끝에 석방되기까지의 경위는 다음과 같다.
지난1월18일상오 7시15분쯤(현지시간) 여느때와 같이「코타바토」시 남쪽 45㎞떨어진 작업현장인 도로로장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카빈」, M-16, M-14 등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강한 2O여명의 「게릴라」들이 나타나 『한국인은 나오라』고 소리쳤다.
「필리핀」사람 사이로 피하자 계속 나오라고 협박해 할 수 없이 앞으로 나섰더니 무장반도들은 한국인이 더 있는가를 몇번씩 확인한뒤 나만을 끌고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하루종일 산속으로의 행진이 계속됐다. 아마도 40∼50㎞나 걸어간 것 같았다. 산속 중간중간에는 반도들의 초소가 있어 보초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에는 잘 따라 갔으나 나중에는 지쳐서 자꾸만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랬더니 조랑말에 나를 태워주었다.
행군중에 목이 말라 물을 좀 달라고 해도 처음에는 주지 않았다.
몇개의 산을 넘은후 하오4시쯤 갈증과 허기로 주저앉으면서 『물과 먹을 것을 좀 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범인들은 「코코넛」을 하나 따주었다. 그것으로 요기를 때우자 그들은 나를 다시 몰아세웠다.
하오5시쯤 어두워질 무렵 범인들의 진지에 도착했다. 안남미주먹밤에 소금과 물을 먹었다.진지에는 1백여명이상의 무장「게릴라」들이 보였다.
하룻밤을 지나 반도들은 산밑 나무위에 만든 오두막집에 나를 감금했는데 이집은 공중에서 볼 수 없도록 위장된 집이었다.
반도들은 나를 가두면서『1천명명이 너를 감시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반도들 간부인 듯한 자가 찾아와 『한국과 우리는 친구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박, 네가 아니다. 「마르코스」정권과 싸우는데 필요한 돈이 필요해서 그렇다. 염려마라. 늦어도 7일 내지 10일이면 너는 석방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다른 계보의「게릴라」들이 방문하면 나를 그들이 안 보이는 곳으로 숨기곤 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약간은 알아 들을 수 있었는데 그들중 간부인 듯한 자와는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자기들이 「마르코스」정부에 반대하는 신인민군(New Peoples Army 약칭 NPA)이라면서 MNLF(회교반군)를 증오한다고 말했다.
어떤 간부는『종교가 무엇이냐』고 묻길래 기독교라고 하면 반대종교라고 죽일것 같아『불교신자』라고 대답했더니 또 『회교도가 한국에도 있느냐』고 물어와『한국에도 회교도가 많다』고 대답했다.
나는 납치된 닷새후인 23일밤12시쯤 첫번째 탈출을 시도했다. 내가 탈출을 꾀하게 된 것은 그때까지만해도 내몸에 몸값이 걸려 있는 것을 몰랐고 『우리에게 납치됐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다』고 반도들이 위협적인 말을 했기때문이다. 나는 꿈속에서 어머니가 보이면서 반도들이 도망가는 나에게 방아쇠를 당겼는데도 죽지않는 꿈을 꾸다가 놀라깨자 즉시 용기를얻게되어 탈출을 결심했다.
나는 보초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살짝 빠져나왔다. 그러나 방향을 알수없어 가시가뒤엉킨 숲속으로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서 반도들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는 바람에 숲속에서 잡히고 말았다.
두번째 탈출은 28일째 되던 11일게 기도했으나 다시 잡혔다. 처음 탈출했다가 잡혔을 때는 『처음이니까 봐준다』면서 별다른 폭행은 하지 않았으나 두번째 잡혔을 때는 발길질과 매질까지 했으며 나무에 철사로 손을 묶고 비끄러 맸으며『죽여버리겠다』며 총을 가슴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했는데 실탄은 장전돼 있지않았다.
반도들은 내가 탈출을 기도하기 전까지는 대우를 잘 해주었다. 소금묻힌 안남미밥을 하루세끼 주었으며「바나나」·담배도 주었다. 나는 16일간 세 번이나 장소를 옮겨가며 감금되었다. 탈출기도후에는 한때 담배도 얻어 피울 수 없었다.
그러나 협상이 시작된 28일이후에는 회사측에서 보내준 김치와 담배를 자유릅게 먹을 수 있었다. 반도들은 협상이 부진하자 신경질적이 되어 밥을 줄때마다 『밥속에 독약을 넣었다』고 거짓말을 하는등 협박을 일삼았다.
내가 2일 석방됐을 때 간부급으로 보이는 세명의 반도가 각자 1백「페소」씩 내뒷주머니에 찔러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2백「페소」밖에 안되었다. 그들은 가면서「콜라」라도 사먹으라고 인심을 쓴 것이었다.
내가 「간다오」전지사의「지프」에 오르자「타이어」를 향해 총을 쏴 「타이어」 2개에이 「펑크」를 냈다. 하오 7시 20분께 나는 「다리칸」읍시장에 도착했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권영진소장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살았구나』라는 안도감이 피로와 공포에지친 온몸에 엄습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