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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시교사의 인간선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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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충남 K군 D국민학교에서만 8년째 근무하고있는 L선생(32)의 부인이 얼마전에 충남 도립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박봉의 교원 봉급으로는 감당키 힘들 정도의 치료비가 나왔으나 L선생은 교원가족들이 받는 3할 할인 혜택을 받지 못했다. 「임시교사」였기 때문이다.
『교육회비도 같이 내고 교원정원에도 들어있는데 왜 이런 푸대접을 받아야 합니까.』사뭇 절규하는 것 같다.

<전국에 2백여명>
같은 자격증에 같은 시간을 근무하며 때로는 훨씬 많은 경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항상 가장 낮은25호봉(본봉5만5천원·개정6만6천원)에 묶여 허덕이며 승진이나 전보의 기회는 물론 공무원 연금법에 명시된 건강진단도, 분만이나 부상·퇴직·사망했을 때에도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그늘 속의 교사」들-전국2백여명의「임시 교사」들은 아직도 정교사로 임용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충남 K군K국교 G선생(27·여)은 교장이 4번이나 바뀌도록 이 학교에 근무해온 최고 고참이다. 그러나 아침 출근할때부터 항상 「울적한 상태」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열별로 되어있는 자신의 출근「카드」는 벌써 8년째 맨 끝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선생들이 모두 건강진단을 받으러 떠난 텅빈 어느 봄날의 교무실에서「일직 아닌 당번」을 8년이나 도맡아 되풀이해온 G선생은『그럴 때가 제일 가슴이 쓰리다』고 했다.
아직 미혼인 G선생은 맞벌이를 원하는 마땅한 신랑감 교사가 나타나도 남자의 근무지로 옮겨갈 수 없기 때문에 적당한 구실을 내세워 거절한 경우도 많았다며 얼굴을 붉혔다.
실제로 어느 여교사는 「임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혼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
H군K국교 K선생(28·여)은 지난해 8월 남편(33)이 승급과 동시에 딴 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자신의 처지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
그래서 미혼 임시 여교사 사이에는 『결혼을 하려면 임시교사라는 것을 감추어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
충남D군의 어느 임시교사는 오직 「임시」의 악령(?)을 벗어나기 의해 5년간이나 꾸준히 노력한 끝에 문교부장관상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끝내 「임시」의 꼬리가 떨어지지 않자 받은 상장을 불살라 버리고 교직을 떠나고 말았다.

<「임시」를 감춰라>
승급도 승진도 없는 이들「제자리걸음 교사」들에겐 그래서 과거의 동료 또는 제자들까지도 지금은 훨씬 높은 호봉으로 같은 학교, 혹은 같은 관내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때로는 좌절감에 젖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오히려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교육에만 열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절박한 것은 이들이 당해야만 하는 경제문제-.
52년 K사범을 나와 5년간의 교직생활을 하다 남편과 사별하는 바람에 다시 교직에 돌아온 것이「임시교사 8년」이라는 K군 S국교C선생(44·여). 『연말연시 호봉을 사정할 때나 동료교사들이 「보너스」를 받고 즐거워 할때 슬그머니 자리를 비워줘야 할 정도로 비참해진다』는 것.
일시퇴직(신병) 때문에 「임시」(2급정)가 된 K군D국교 K선생(40)은 『7호봉이 높은 옛날의 제자(29)와 16호봉이나 높은 K사범 동기동창인 교무주임(40)과 나란히 같은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아무런 거리감을 느끼지 않으나 수당을 합해 8만원밖에 안되는 쥐꼬리 월급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고 했다.
이래서 셋방신세를 못 면하고도 항상 빚에 쪼들리고있다.

<제자가 훨씬 앞서>
반면 경제적인 쪼들림은 참을 수 있어도 「정신적인 고통」은 견딜 수 없다고 말하는 교사도 있다. 『우리 선생님은 왜 전근을 가지 않는지?』 이같은 의문을 보이던 학부모나 학생들이 뒤늦게「사정」을 알고서는 다른 교사(정규)들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것으로 멋대로 판단해버릴 때,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강한 모멸감에 사로 잡히게 마련이다.
B군의 K선생은 지난해에 자신이 담당한 학급이 교내에서 성적1위를 차지, 교장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다.
그러자 이를 시기한 동료여교사들이『임시교사가 잘 가르치면 뭘 해…』하는 식으로 빈정거려 크게 다툰 일도 있었다며 씁쓸해했다.
H군의 B국민교 L선생(32)은 한때 6학년 담임만을 줄곧 해왔으나 「임시」라는 것이 알려진 후부터는 6학년을 한번도 맡지 못했다는 것.
모순은 이뿐만이 아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발령 받은「임시교사」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인데 비해「임시」발령을 받고 근무하다 군대를 갔다온 선생은 정규교사로 발령을 받는 등 이 제도는 당초부터 혼선을 빚고 있다.

<69년에 편법채용>
「임시교사」제도가 생긴 것은 교원들의 이직이 심했던 69년 전후.
당국은 급한 대로 선생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교육대학에 임시초등교원양성소(2급정·또는 준교사)를 만들어 이곳 출신이나 구제 사범학교출신 중 복직교사들을 마구「임시」라는 편법으로 발령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해 12월 초순 관계기관과 각 언론기관 등에 두툼한 탄원서가 배달된 적이 있었다.
「국민학교 임시교사들의 정식임용에 관한 탄원」이었다. 이들은 이제 탄원 아닌「인간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흥재· 임병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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