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 소설 독자가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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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프랑스」의「제라르·드·빌리에」라는 작가가 발표하고 있는 비밀 정보 조직 SAS를 소재로 한 연작 추리 소설이「프랑스」독서계를 뒤흔들어 놓아 작년말로 4백만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이다. 그런가하면 최근 일본 출판계의「베스트셀러」는 거의 추리 소설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모리무라」라는 작가가 써내고 있는 20여권의 추리소설(그중 2권이 1월중「베스트셀러」2, 4위를 차지)은 계속 매진의 신기록을 수립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프랑스」나 일본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얼마전 작고한 여류추리작가「애거더·크리스티」가「리바이벌·붐」을 일으키는 등 추리소설이 일대「붐」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영향을 받았음인지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추리소설이 고개를 쳐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고 김내성씨(1909∼58)가 처음으로 한국적 추리소실의 기틀을 다져 놓은 후 몇몇 작가들이 추리소설을 발표했지만 그것은「시도」로 그치고 말았고 독자들의 반응도 신통치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 추리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2, 3년 전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외국 추리소설의 번역물들이 팔려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이에 곁들어 국내작가들의 작품도 상담한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것.
국내작가의 작품으로 대표적인 것이 본격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김성종씨의『최후의 증인』『여명의 눈동자』등과 오래 전부터 추리 소설 보급에 앞장서온 현재훈씨의『뜨거운 빙하』와『흐르는 표적』등(현씨는 연내로 10권 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미 발간된 H사의 20여권, P사의 10여권 등 번역 추리소설에 비할 때 김현씨 등의 작품은 양적으로 보잘 것 없지만 금씨의 작품들이 각기 5만 이상 팔렸고 현씨의 작품들이 초판을 발행한지 얼마 안 돼 재판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추리 소설의 가능성울 보여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또「미스터리·클럽」(회장 이가형)한국 추리 작가협회(회장 현재훈)등 추리 소설 관계단체들도 앞으로 올 추리 소설시대의 디딤돌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보여진다. 「미스터리·클럽」이 이가형(국민대) 황종호(성대) 이군철(연세대) 윤종혁(홍익대)등 주로 외국문학을 전공하는 10여명의 대학교수들이 회원인데 비해「한국추리작가협회」는 현씨와 안동림(작가) 장백일(평론가)씨를 비롯, 아직은 습작만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추리작가로「데뷔」할 것을 꿈꾸는 예비추리작가들이 회원인 점이 특징. 그래서 한국추리작가협회는 곧 회원들의 추리 단편집을 낼 계획이다.
추리소설「붐」을 예고하는 또 하나의 현상은 순수 문학 작품을 써오던 몇몇 작가들이 본격적인 추리소설은 아니지만 그들의 작품에 추리적 수법을 가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철영씨가 단행본으로 출판한『심판의 집』, 유지종씨가「문예중앙」에 발표한『형제』등이 그것인데 독자들의 반응도 좋고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는 평. 조선작·조해일·최인호씨 등 70년대 작가들도『추진적 수법의 소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여 그런 유의 작품을 써 볼 눈치를 보이고 있다.
현재훈씨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서 그 동안 추리소설이 발전하지 못했던 까닭은 『순수문학 작품이 아니면 문학이 아니다』는 것이 통념처럼 되어 작가들이 의식적으로 추리소설을 기피했기 때문이라는 것.
또 석종호 교수는 그 동안 우리사회가 추리 소설을 받아들일만한 정신적 경제적 바탕이 마련돼있지 않았고 이 방면의 평론도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는데 지금은 그러한 문제들이 해소됐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추리 소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추리소설에 대한 일반이나 문인자신의 선입견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 독자로서는 추리소설도 틀림없는 문학의 한 유형이라는 점을 인식해야하며 문인으로서는「하드·보일드」일변도나「코넌·도일」류의「탐정놀이」만이 추리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심리문제까지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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