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의 우열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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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교 무시험 추첨 진학제의 실시에 따라 빚어지고 있는 중·고교생들의 전반적인 학력저하현장은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이에 대한 근본 대책이 있어야하겠다는 요청이 있어 온지는 벌써 오래됐다.
고교입시가 추첨 배경으로 바뀐 뒤 중학교부터 교육의 내실이 전체적으로 부실해졌고 학생들은 능력이나 개별적 특성과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고교에 배정된 뒤 학력 차가 심한데서 오는 수업곤란·학습 의욕 상실 등으로 학교 생활의 불편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문교당국이 능력별 반 편성·지진아에 대한 보충 수업 강화 등 학력저하를 막기 위한 보완책을 허용키로 한 것은 참으로 온당한 일이다.
원래 문교 행정이란 일선학교에 대한 친절한 교과과점 운영지도를 위주로 한「장학행정」에 주력하는 것이 정도다.
학교 안에서의 우열반 편성문제나 학생지도 등 세부적인 것은 전적으로 학교당국이나 교사의 자율적 재량에 맡겨져야 할 성질의 것이지 정책 입안 기관인 문교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
학교 교육은 그 학교의 건학 이념과 특성 등 무형의 유산과 전통을 밑바탕으로 거기에 알맞은 인재를 구하자는 것이며 이는 교육의 본래적 기능과 권한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교당국이 무시험 추첨의 부작용에 대한 뚜렷한 대책도 제시하지 못한 채 무조건 고교 우열반 편성이나 보충수업을 일률적으로 금지해 온 것은 결과적으로 부작용을 더욱 심화시킨 단견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학교 밖에서의 치열한 과외공부를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고, 거기에 참여할 수 없는 수많은 빈곤층 학생들에게는 그만큼 가슴 아픈 교육의 결손을 입게 했다.
물론 우열반 편성이나 보충 수업 강화 방안에도 그에 따른 또 다른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 부작용 못지 않게 그 허물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한「메리트」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우월감과 경쟁을 통한 성취감을 갖도록 함으로써 진취성을 북돋워 줄 수 있다. 또 학습 지진아들에게는 보충수업을 강화함으로써 보다 충실한 학습 기회를 가져다준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이 밖에 가정 형편상 학교 밖에서의 과외공부나 학과 공부를 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그 만큼 유효한 진학준비 교육을 학교 내에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렇게 볼 때 고교 우열반 편성권과 보충 교육 강화방안은 그 실시에 따른 이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고교생의 학력 저하를 방지하기 위한 보다 양원적인 방법은 역시 교과 무시험진학제도 자체의 재검토라는 방향에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가 되고있는 고교에서의 학습 지진학생도 고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중학교에서부터 이미 배출되고 있다.
국민교 때부터 콩나물 교실에서 제대로 초등 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아동이 그대로 중학에 진학하고 이들은 고교 입시를 위한 경쟁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중학을 마친 다음 또 다시 일정한 기준의 선발도 거치지 않고 고교에 배정돼 이른바 지진학생으로 말썽을 빚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가만히 덮어두고 고교에서만 특별대책을 세우려는 것은 본질적 문제를 호도하려 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교육이란 능력에 따라서 해야한다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진리다. 능력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사회에는 정체나 후퇴만이 있을 뿐이다. 더욱이 우리는 이제 세계의 모든 나라와 맞서 치열한 경쟁을 해나가야 할 처지가 아닌가.
특히 중·고교생의 학력 저하가 국민전체의 지식 수준 저하를 불러 올 것임을 생각한다면 고교를 중심으로만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발상은 극히 고식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중·고교생의 학력저하를 막는 길은 무엇보다 고교 무시험 진학제를 폐지하고 경쟁 시험 체제로 환원시키는데서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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