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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전문직 봉사자 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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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남매는 동네 가게에서 빵을 훔치다 잡혔어요. 풀어줬더니 다음엔 라면을 훔치다 잡혔고,그 다음엔 사과를 훔쳤어요. 결국 상습 절도 혐의로 처벌받았어요.

남매에겐 죄의식이 없었어요. 너무 배가 고팠대요. 그래서 훔쳤대요.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엄마는 도망갔어요.학교도 못 다녔던 열네살, 열두살 오누이는 그렇게 범죄자의 길로 가고 있었어요."

1999년 희영이(가명)남매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리자 이선후(49.대구)변호사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4년 전의 일인데도 李변호사에겐 "여전히 눈물이 날 만큼 참혹한 상황"이었다.

李변호사가 속한 전문직 자원봉사자 팀은 대구지방법원 소년부로부터 남매를 건네받았다. 처벌이나 격리보다 근본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李변호사는 신부.교사.의사 등과 함께 남매를 보살폈다. 희영이를 대구 카톨릭여자기술원에 보내고 막내도 아동 보호기관에 보냈다. 아버지는 의료기관에 치료를 맡겼다. 한편으론 집 나간 큰 딸(15)과 엄마를 찾아 다녔다.

시간이 흘러 지난해. 가족이 다시 뭉쳤다. 그간의 사연은 너무 길고 구구절절하다. 여하튼 지금은 희영이만 꽃꽂이 등을 배우느라 카톨릭여자기술원에서 따로 산다. 주말마다 온 가족이 만난다.

전국에서 李변호사처럼 청소년 상담 자원봉사를 하는 전문직 종사자는 현재 3백7명이다. 99년 한국청소년상담원(02-2253-9342)이 처음 제도를 도입한 이래 모두 4백68명이 참여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교사.의사.약사.목사.교수.변호사 등이다.

전문직 자원봉사 제도는 여러 모로 기존의 상담 방식과 다르다. 동네의 어른들이 나서 동네의 문제아를 돌본다는 개념부터 독특하다. 아이는 소년원.보호관찰소 등에서 추천을 받는다.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지역 공동체의 어른이 모여 한 팀을 이룬다. 이들은 각자의 전공을 살려 문제 아이를 '전방위'로 보살핀다.

교사는 학교 생활에 조언을, 의사는 의료 혜택을, 변호사는 법률 지원을 제공하는 식이다. 아이뿐만 아니라 아이의 부모나 교사.친구 등 주변 인물 모두가 상담 대상이 된다.

자연스레 아이의 생활 전반을 돌보게 되는 것이다. 어른이나 아이나 '한동네 식구'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선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외려 대구.광주.대전 등 지방에서 활발하다. 도시화가 덜 됐을수록 공동체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상담 전문 시설이 부족한 지방의 사정도 고려됐다. 청소년상담원 금명자 상담교수는 "이름만 번듯한 자원봉사나 말만 번지르르한 청소년 상담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싶어 전문직 봉사제도를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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