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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탐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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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미백곰이 북극의 여우목도리를 하고 얼음 위에 「마네킹」처럼 서있었다. 딸이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묻자 『최근에는 북극에도 손님이 많이 오니까 좀 멋을 내야잖겠니』하고 어미 곰이 대답했다.
어느 외지에 실린 만화다. 이렇게 요새는 극지는 각국의 탐험가들로 붐비고 있다. 상설 관측기지들도 많이 있다.
극지에서는 밤이 1백79일 동안이나 계속된다. 겨울에는 평균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북극의 3분의2는 2천m가 넘도록 두터운 얼음으로 덮여 있다.
「존·가보트」가 「헨리」 7세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북해를 향해 떠난 이후 수백명의 탐험가들이 이곳을 찾다 숨졌다. 왜 그랬을까? 단순한 명예욕이나 모험심 때문에서였을까?·
『비록 이 벽원의 땅이 아무 값어치가 없다 하더라도 매우 흥미를 끄는 곳이며, 사람들은 자주 승리며 고난에 찬 비극의 얘기에 놀라게 되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학의 「프랭크·데벤함」 교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 「스코트」의 비극이다.
영국인 「팰컨·스코트」는 1910년부터 남극점에 도전했었다.
드디어 그는 12년1월17일 남극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는 35일전에 「아문젠」이 「노르웨이」 국기를 꽂은 다음이었다.
상심한 「스코트」 일행 5명은 돌아오는 길에 눈보라를 맞아 숨지고 말았다. 온 세계의 동정은 「스코트」에게 쏠렸다. 7개월 후에 발견된 그의 일기는 당장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불후의 위업을 이룩한 「아문젠」은 오히려 악한취급을 받았다.
누가 남극점에 먼저 도달하느냐는 것이 중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나 잘 고난을 이겨내느냐는 게 더 중요한 관심거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다름이 없다. 『극지탐험사는 철두철미 인간정신에 미친 미지의 힘에 대한 하나의 큰 증터이다』라고 「난센」도 말한 적이 있다. 본사는 올해 안에 우리나라 역사상 초유의 극지탐험을 감행키로 했다. 우리의 국력과 우리국민의 의지가 이 지난한 도전을 능히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대장은 역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김영도씨. 똑같이 「에베레스트」를 세계최초로 정복한바있는 「힐라리」도 지난 58년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남극점에 도달했었다. 극지는 끝없는 고비로 가득 차있다.
「오로라」의 정체도 아직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1백만년이 넘는 지구의 신비로운 역사는 2천m 두께의 얼음 속에 그대로 묻혀 있다.
이런 수수께끼들을 꼭 풀자고 떠나는 탐험대는 아니다. 감동에 찬 극지의 역사에 우리 손으로 귀중한 또 한 「페이지」를 기록하려고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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