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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면이란 무기|김정흠씨(고려대 교수·물리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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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77년은 속된 말로 7땡의 해, 야구로 말하면 「러키·세븐」이 2중으로 겹친 운소좋은 해였다.
정치적으로는 새로 출범한 미국의 「카터」정부 및 일본의 「후꾸다」 내각과 새로운 협력체제를 구성한 해요, 경제적으로는 수출 1백억 「달러」를 돌파하여 세계 무역고의 1%를 차지한 17번째의 나라가 된 영광스러운 해였다.
과학계 쪽에서 본다면 77년은 60만㎾의 출력을 내는 고리 원자력 발전소 제1호기가 정화되고 부분적 가동을 시작한 원자력 시대 출범의 해요 또 과학 재단이 설립되어 과학한국의 「이미지」를 높인 해이기도 하였다.
또 사회학적으로는 한국의 총 가구 수 약 6백47만의 반이 TV를 보유하게된 단자매체시대의 기원 영년이기도 하였다. 전자 「미디어」시대, 좀더 넓게는 정보화 시대의 도래에 따라 필연적으로 우리 나라 사회도 큰 변혁을 겪게 되고 가치관·윤리관·도덕관 등등에도 점차적인 일대변혁이 시작된 해였던 것이다
또 산업방면에서는 중화학공업에의 약진에 대비한 기계공업이 급진적 발전을 이룩하여 한국산의 우수한 공작기계는 드디어 미국에 까지 상륙하게 되었고 세계 공업국가의 「심벌」이라고도 할 자동차 및 조선산업이 급「템포」로 발달되어 세계 각국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지난1년 동안 외국의 유명 일간지·월간 경제지들은 한국 「붐」을 일으켜 늦어서는 안될세라 앞을 다투어 「한국특집」을 내고 약진하는 한국 공업, 한국인의 근면성, 한국의 꿈을 소개하는 등 77년은 정말로 「한국의 해」와도 같은 느낌이 난다.
그에 따라 우리는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한국민으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되찾게 되고 무엇인가 으쓱해지고 뽐내고 싶은 심정을 느낀다.
한 나라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쓰라리고 비참한 시대가 반드시 있는 법이다. 우리는 일제하 36년의 악몽에 이어 6·25전후의 쓰라린 빈곤기를 겪고 오는 동안 자신감이나 자존심마저 잃어버리려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77년을 계기로 우리에게도 볕은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에게 이토록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주는가. 사실 한국은 고래로 자원이 거의 없는 가난한 나라였고, 게다가 달갑지 않아도 세계 제 1의 인구밀도를 갖는 나라이기도 하였다. 식량마저도 자급이 안되었고, 광물이고, 임산물이고 신은 그토록 우리에게 불공평하기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가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재산이 있었다.
그것은 교육열이다. 북청의 물지게꾼의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남의 집 물을 길어주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아들 딸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에 보낸 자기 희생적인 정신, 북청 물지게꾼의 이 미담은 북청 사람들만의 미담이 아니라 실은 5천만 한국인은 누구나 다 갖고 있는 정신적 재산이었던 것이다.
『고기기 한 마리를 주면 며칠간의 식량이 되나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일생의 식량이 보장된다』라는 중국의 속담이 있다.
가난 속에서도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왔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얼은 70년대의 이 영광스러운 도약의 시대에 그 빛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높은 교육 보급율 외에 우리에게는 근면이라는 또 하나의 무기가 있다. 불행하게도 일제 36년간 우리는 가난 속에 너무도 자기비하, 자학을 한 나머지 게으른 백성인 줄만 착각한 일 조차 있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 사람보다도 부지런했다는 것이 우리의 민족성이었다. 지난 1년동안 세계각국의 유명 일간지와 월간지에 소개된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근면성을 재발견하고 놀라기조차 했다.
확실히 우리는 근면한 백성들이다. 세계에 자랑할만한 두 무기, 교육열과 근면성, 이 두 무기야말로 고도화한 산업세계, 발전하는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알차고 힘있는 자원인 것이다.
자신감을 되찾고, 근면성을 재발견한 해, 그리고 당당히 세계 17개 강대국 속에 끼게된 해, 이 해를 보내면서 이토록 자신감에 넘쳐 무엇인가 솟아오르는 힘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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