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관 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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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상오 5시30분 기상, 신문 읽기, 「라디오·모니터」, 아침 식사, 8시30분 등청-. 대부분 장관들의 공식 일과는 이 등청 후부터 시작돼 하오 6시30분 퇴청할 때까지 이뤄지는 것이 상례다.
부처에 나오면 차관·국장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고 「결재」를 하지만 장관이 하루 결재하는 양은 많으면 40여건.
장관의 업무량으로 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것은 내방객 접대다. 외부 손님은 줄잡아 하루 5∼6명, 많으면 10명선. 한 비서관은 『유신 전에는 내방객이 많았고 그중 절반이 국회의원들이었으나 요즘은 국회의원 출입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는 K장관의 경우 평균 30회. 이중 외부 전화가 절반이다. 장관이 통상 참석하는 회의는 거의 매일 있는 부내 국장회의, 주 2회 (화·금) 열리는 국무회의, 월간 경제 동향 보고, 수출 진흥 확대 회의 (월 1회). 그밖에 각종 대책 회의와 심사 분석 회의, 평가 교수단 보고회, 각종 위원회에도 참석해야 하고 경제장관들은 바로 주 2회 (월·목) 경제장관회의에 나간다.
장관 모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모임은 국정을 협의하는 국무회의. 국무회의 참석자는 새로 동력자원부 신설로 20명 장관과 법제처장·원호처장·서울시장 등을 포함해 23명. 장관급은 행정 개혁 위원장, 안보회의 상임위원장, 경제 과학 심의 위원, 청와대 일부 특별 보좌관, 국민회의 사무총장, 법원 행정 처장,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등 52명이지만 이들이 장관들처럼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없고 권한과 지위도 장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별정직 공무원인 장관의 월봉은 46만원, 판공비 (기관 운영비)는 80만원선.
외무·내무·법무·문교·문공·과학기술처 장관에게는 그 업무에 따라 많으면 3백만원, 5백만원까지 이른다는 액수 미상의 정보비가 책정돼 있다.
장관이 요리하는 예산은 많으면 1조2천억원 (국방), 적게는 15억원 (통일원)에 이르고 있고 국 규모로는 상공부가 동력자원부를 떼내고도 11개국으로 가장 많은 국장을 거느리고 있다. 그 다음이 외무·내무부가 10국, 경제기획원 9국 1외국의 순.
장관 발령을 받으면 자택에 경비 전화가 즉각 가설되지만 장관 집무실에는 일반 전화 2대, 구내 전화 2대, 경비 전화 1대, 청와대 직통 1대, 비상 전화 1대 모두 7대.
『간단한 업무보고는 전화로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있지만 붉은색 청와대 직통 전화를 사용하는 장관은 별로 없다. 청와대나 중앙청에서 비공개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는 대부분의 정책이 심의·의결되는 것이 상례다. 11월말 현재 통계를 보면 금년 1월부터 11월까지 87회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포 안 9, 법률안 84, 대통령령 3백54, 일반 안건 5백33, 보고 안건 54건으로 하루 평균 12건의 안건을 심의했다.
별 말썽 없는 국무회의서도 가끔 문제가 있다. 최규하 내각 출범 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는 구정 공휴일 문제를 거론했으나 8개 부처장관만 찬성하는 바람에 백지화 한 일도 있다.
장관 중에는 신분상의 예우가 아직 부족하다는 불평이 없지 않다. 판공비 부족이 자주 거론되는 불평 항목이지만 70년에 지급한 「뉴크라운」 승용차는 바꿨으면 하는 희망들. 얼마전 지방 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모 장관은 고속도로 위에서 승용차가 고장이나 낭패를 봤다.
그래서인지 몇몇 장관은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
공관이 있는 장관은 외무·국방뿐이다. 한때 경제장관들의 공관을 지을 계획이 있었으나 예산에 개 1마리 값까지 책정하는 바람에 국회에서 말썽이 되어 이미 짓고 있던 건물을 다른 용도로 팔아 넘겼다.
장관직에 장수하는 비결은 능력 이외에 몸조심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들 있다.
최 총리는 취임 초 말조심·부인조심·비서조심 등을 말한 일이 있지만 서정 쇄신 단계에서 이런 경향은 특히 더 하다. 행정 체제가 경직되고 하의상달이 안 된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장관의 권한은 막강하다. 『장관의 권한이 70년대 이후 점차 강화되는 느낌』이라고 정부 관리들은 이구동성이다.
『마음 맞는 사람과 일하도록』 부내의 인사권에는 거의 「프리·핸드」를 갖고 있다.
왕년의 J 장관은 큰 정책을 밀고 나갈 때마다 국장들의 일괄 사표를 받아두곤 했었다. 『장관 눈밖에 나면 견뎌내지 못한다』는게 관계의 통념이다. 개각철만 되면 고위 정부 관리들이 특히 자기 부처 장관의 향배에 관심을 쏟는 이유도 알만하다. <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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