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필 무소임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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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 8대 의원을 지낸 후 9대 때 공천을 받지 못해 정치권에서 물러나는 걸로 알았다가 유정회로 진출한 이래 국회 보사위원장·보사부장관·국회 건설위원장을 거쳐 다시 장관직을 맡게된 「끈질긴 관운」.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차분하고 깐깐한 성격. 준장 출신의 군 경력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선비형.
그의 청빈한 생활 자세 때문에 그 밑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이 「살림」을 꾸려 가는데 고충이 많다는 얘기. 그래도 주변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맥주 「살롱」에 들르는 애주가이나 가끔 술값이 모자라 명함이 맡겨지기도 한다. 69년 3선 개헌 때는 누구보다도 먼저 선거구에 내려가 박 대통령의 계속 집권을 사랑방 좌담을 통해 역설. 건설위에서는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식으로 야당을 휘어잡아 일부 야당 의원들이 혀를 찰 정도.
1급의 바둑 실력으로 한때 국회 위기 구락부 대표를 맡았다.
지난 70년 57세로 재혼, 「노신랑」의 화제를 낳았다. 고재호 전 대법원 판사와 종형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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