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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의 권력구조 개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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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괴는 그들의 소위 「최고인민회의」와 「정무원」의 양대 「국가기관」에 걸쳐 대대적인 인사개편을 단행했다. 그들의 인사이동이 어떤 형태로 취해지든, 그것이 김일성 1인 독재의 절대적 심화라는 점에선 아무런 본질적 변화도 없는 것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번의 인사개편에는 상당한 정치적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임은 추단할 수 있다.
우선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의 인사개편은 그들 나름대로의 궁색한 위기대처체제라는 점이다.
북괴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는 「이데올로기」상의 정치적 위기와 6개년 계획의 부진이라는 경제적 위기로 요약된다.
「이데올로기」상의 정치적 위기란 공산주의적 억압사회에서의 인권유린에 대한 체제 내외로부터의 비판과 저항을 의미한다. 이러한 안팎의 비판과 저항은 소련·동구·중공 등 거의 모든 공산국가 내부에서 대두하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북괴라고 해서 이와 무관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위기에 대처하는데 있어 김일성 일파가 스스로의 폐쇄적 독재권을 완화하여 다소나마 개방된 자유화를 허용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북괴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기왕에 존속해온 폐쇄성을 더욱 강화하여, 있을 수 있는 반 「스탈린」주의적 경향의 대두를 아예 싹부터 잘라놓는 일일 것이다.
이번 개편에서 당과 군의 사상담당 책임자인 양형섭과 이용무, 그리고 외교책임자인 김동규와 김영남이 숙청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폐쇄성 강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 한가지 주목할만한 변동사항은 박성철 내각의 해체와 이종옥 실무내각의 진출이다. 이종옥의 발탁을 비롯한 상당수의 신인 경제「테크너크래트」의 진출은 김이 언급해온 「관료주의 퇴치」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으며 이것은 바로 그들이 직면한 경제위기와도 직결된 인사이동일 것이다.
김은 경제부진의 책임과 「공산주의 하에서의 권력과 주민간의 모순관계」 책임을 모두 한 묶음으로 기존 중간간부의 관료주의에 전가하여 숙청함으로써, 자신이 져야할 최고책임을 회피하고 독재권좌의 유지를 도모하려한 셈이다. 6개년 계획이 부진하고, 주민생활이 궁핍해진 책임, 주민들이 당과 국가로부터 소외되어 정권의 대중적 기반이 희박해진 책임, 그로 인해 자신의 독재권력이 동구에서처럼 도전 받을 수도 있는 개연성의 책임 등을 모조리 중간간부의 독선과 직무태만에 돌림으로써 그 위기에서 탈출해 보겠다는 것이 바로 김의 전술인 것이다.
사상과 정치에 있어서의 수구성·폐쇄성의 강화, 그리고 행정과 경제운영에 있어서의 신인 돌격「팀」의 등용을 통해 김은 공산권 일반의 최근 추세인 실용주의화를 정면으로 거역하고 나선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대 역행적 폐쇄주의가 북괴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해소시켜 줄리는 만무하다.
오늘의 공산권제국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적인 개방과 절충적인 실용주의를 도외시한 폐쇄적 공산권력이란 대외적인 마찰과 대내적인 황폐만을 가중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사리가 이와 같을진대 이번의 인사개편으로도 김일성 일파는 결코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진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괴위기의 책임은 김 자신과 그의 시대착오적 전제체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놓아둔 채 중간 하수인만 경질한다는 것은 아무런 묘방이 될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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