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정 "경사 심해 진입 곤란" … 어업지도선은 배 올라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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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침몰하던 지난달 16일 오전 9시43분. 현장에 도착한 해경 경비정 123정이 목포해양경찰서에 무선 교신으로 보고했다.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 못 나오고 있답니다. 그래서 일단 이곳 직원을 시켜가지고 안전 유도하겠습니다. 이상.”

 1분 뒤, 123정 해경 대원 1명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세월호 4층 갑판 중간 부분에 올랐다. 그는 뚜벅뚜벅 뱃머리쪽 구명뗏목들을 묶어놓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구명 뗏목을 손으로 풀어보려고도 하고, 발로 차기도 했다. 그러기를 3~4분. 승객에 대한 조치는 없었다. 수 분 전 123정이 보고한 내용을 전혀 모르는 듯한 행동이었다.

 세월호 침몰 당시 해경의 구조 활동이 부실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번엔 당시 최초 출동한 123정과 서해해양경찰청·목포해양경찰서 간의 무선 교신 녹취록을 통해서다. 녹취록은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김춘진 의원이 지난 16일과 18일 각각 공개했다.

 본지가 교신 내용을 동영상에 기록된 해경 구조활동과 비교한 결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다. 오전 9시47분 123정은 다시 한번 “승객 절반 이상이 지금 안에 갇혀서 못 나온다”고 서해·목포 해경 상황실에 알렸다. 오전 9시43분 교신에 이어 두 번째다. 이때쯤 해경은 몇몇 대원이 세월호에 더 올라 조타실에서 빠져나오는 선장과 선원들을 구조했다. 오전 9시49분에는 한 대원이 밧줄을 잡고 조타실로 올라가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승객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려는 시도는 없었다.

 서해해경청은 “123정 직원들이 안전장구를 갖추고 여객선에 올라가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에 대해 123정은 오전 9시53분 “(배가 많이 기울어) 경사가 너무 심해가지고 올라갈 길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16분이 지나 배가 더 기운 오전 10시9분 현장에 도착한 전라남도 어업지도선 승무원들은 밧줄을 들고 배 제일 뒤쪽으로 올라가 갑판에 나와 있던 승객들을 구했다.

 세월호 선장을 찾으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은 당일 오후 1시33분이었다. 그 직전 해경 3009함으로부터 “(해양수산부) 장관님 도착”이란 보고가 오자 목포해경 상황실은 즉시 “현장 구조세력들은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구조에 임하기 바람.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구조업무에 임하기 바람”이라는 무선 교신을 전했다.

 검찰은 이처럼 허술하게 구조작업이 이뤄진 데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 15일 이준석(69) 선장 등 선원 15명을 전원 기소한 뒤 수사 방향을 바꾼 것이다. 우선 진도 해양교통관제센터(VTS)에 대해서는 직무유기 적용을 검토 중이다. 선박자동인식시스템 등을 통해 세월호가 사고 직전 급선회하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데 대해서다.

 구조 활동의 문제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과실치사 혐의 적용 가능성까지 배제하지 않고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연세대 한상훈(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 123정이 선내 진입을 할 수 있는 상황이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한다면 과실치사 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목포=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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