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 같은 여린 순 고집할 필요 없어 … 짙게 쇤 잎에 녹차 고유의 맛 더 강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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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호 14면

녹차에는 숙취 해소와 항암·항균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 이병래(사진) 교수는 1994~96년 캐나다 캘거리 의과대학 박사후 과정을 계기로 녹차의 효능을 연구해 왔다. 그는 전통방식과 대조적인 차 문화를 주장한다. 색다른 녹차 예찬론자인 이 교수를 전화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현대의학으로 본 차 문화 -조선대 이병래 교수

-녹차의 어떤 성분이 인체에 유익한가.
“녹차에는 폴리페놀(polyphenol)이 다량 들어 있다. 카테킨이라고도 하는데 녹차의 쓴맛을 내는 성분이다. 녹차에서 우리가 취하고자 하는 성분은 바로 그 폴리페놀과 카페인이다. 폴리페놀은 항암·항균·항산화 작용을 하고 카페인은 차의 필수 기능인 각성제 역할을 한다. 폴리페놀은 여린 잎보다 짙게 쇤 잎에 배 이상 더 들어 있다. 정신을 맑게 하려면 고온으로 우려내야 카페인 성분을 많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명품차를 만들 때는 세작이나 일기일창처럼 여린 순과 잎만을 골라 취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단맛을 좋아해 식후에 구수한 숭늉을 마셔 왔다. 그런데 녹차는 본래 맛이 떫고 쓰다. 여린 순과 잎에 미량의 단맛과 구수한 맛(아미노산)이 있다. 대신 폴리페놀과 카페인 성분은 적다.”

-차는 기호식품이다. 전통적인 차 문화에서 기능성보다 향과 맛을 더 중시하는 건 당연하다.
“그럴 수 있겠지만 매우 유익한 폴리페놀 성분을 대부분 포기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 차를 인문학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자연과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쓰거나 떫은맛은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다. 커피는 여러 첨가물을 넣고도 특유의 향을 유지한다.”

-차를 우려낼 때 다인들은 품천(品泉)이라 해서 물을 중시한다. 차 맛은 결국 물맛이라고까지 한다.
“맑은 물이면 그걸로 충분하다. 물은 H2O다. 물에 녹아든 미네랄이나 영양소를 따지는 것 같은데 그건 무시해도 좋을 만큼 극미량이다. 알칼리냐, 산성이냐 따져 봐야 별거 없다. 예민한 미식가들의 취향을 말릴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자꾸 특별화하니까 대중이 녹차를 멀리한다. 육각수 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세상에 육각수 아닌 물은 없다. 물은 어떤 물이나 다 육각수다. H2O 분자구조가 수소 결합을 해서 결정되면 모두 육각형이다. 그래서 나는 쇤 녹차 잎을 사시사철 따다가 아무 물에나 팔팔 끓여 마신다. 다인들처럼 격식 갖춰 행다(行茶)하는 건 일 년에 몇 차례 되지 않는다.”

-다인들이 기겁하겠다.
“고급화와 대중화를 모두 인정하면 기겁할 것도 없다. 와인처럼 말이다. 녹차는 커피보다 훨씬 장점이 많은 웰빙 음료다. 한국인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녹차보다 커피를 선호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대중이 접하기 쉽고 편하게 해야 녹차 마시는 인구가 늘어난다. 쇤 녹차 잎을 쓰면 아무 때라도 채취할 수 있고 국민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거다.”

-차를 팔팔 끓였다가 쓰고 떫은맛은 어떻게 중화하나. 첨가물을 넣으면 맑음을 지향해 온 차 문화와 배치되는데….
“물처럼 연하게 해서 마시면 그렇게 쓰거나 떫지 않다. 기록에 보면 우리 선조들은 약차를 탕기에 끓여 마셨다. 꿀을 타 마시기도 했던 것 같다. 맑음은 형식보다 내용이다. 푹 끓여야 카페인이 많이 우러나 정신이 맑아진다. 커피처럼 좋은 성분을 추출해 과립 형태나 분말 형태로 가공할 필요가 있다. 커피와 섞어 마셔도 좋다. 더운 물에 녹아드는 녹차커피를 만들어 머그잔에 담아내면 녹차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다.”

-녹차는 냉한 성질이 있다 하여 소음인들이 꺼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의학적으로는 누구나 마셔도 좋다.”

-특히 푸얼(普洱)차가 숙취 해소에 좋다는데.
“푸얼차 맛이 순해 그렇게 느낄 뿐이다. 숙취에는 푸얼차나 홍차보다 오히려 녹차가 더 좋다.”

-서양 의학계의 녹차 연구 실태와 활용도는 어떤가.
“최근 10년 사이에 대단히 많은 연구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분야가 암이다. 심혈관계·당뇨병·비만 및 자외선에 의한 피부 손상 방지 등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암 치료 및 예방 분야에서는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어 조만간 약제로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녹차의 음료로서 활용성은 이미 검증돼 널리 이용되고 있고 식품 첨가물이나 화장품 등 활용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병래 1957년생. 조선대 의학전문대학원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주임교수. 녹차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고 녹차 추출물 혈당 강하제, 폴리페놀 코팅 쌀, 녹차 밴드 등 대한민국 특허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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