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결」에 쫓긴 체면치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진통을 거듭해 온 여야간의 정치의안 협상이 29일 마침내 타결, 연말 국회에 청신호가 켜졌다.
야당이 요구한 ①헌정심의위 구성 ②통일 주체 대의원 선거법 개정 ③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④국회법 개정 ⑤소득세법 개정 ⑥부가세법 개정 등 6개 의안을 놓고 여야간에 벌여 온 이번 협상 결과는 체제와 유관한 「헌정」과 「통대법」은 묵살하는 것으로, 여야 의원 개개인 및 당리와 관련되는 선거법·국회법은 부분 개정 실현으로, 세법은 어느 정도 야당 주장을 관철하는 3가지 범주로 낙착됐다.
체제 관련 의안에 대한 협상 결과는 오늘의 정국 분위기와 여야 관계를 실감케 한다.
정부-여당이 「성역」으로 고수해 온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야당의 「거론」조차 문제 됐으며, 선거를 1년 앞둔 시점에서까지 정치의 본질에 해당하는 이런 문제의 국회 논의조차 제대로 안되는 현실은 우리 정치의 경직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주는 일이다.
당초 야당은 이 두 의안 중 「헌정」은 어느 정도 햇빛을 보지 않을까 기대한 것 같으나 결과적으로는 좌절을 맛본 셈이다. 이른바 「온건 야당」으로 불리는 신민당에 대한 정부·여당의 정치적 배려가 이 문제에 대한 수용 자세에서 나타난 것으로 읽을 수 있으며, 결국 「온건 야당」에 대한 배려는 기껏 소득세법 개정 정도로 나타났다.
「헌정」안을 상정→ 제안 설명→처리한다는 협의는 결국 이 안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인데 국회에 제출된 의안에 대한 상정·제안 설명·심의·처리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절차가 이토록 어려운 고비를 거쳐야 이루어진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통대법」에 있어서는 야당내에서 여러 차례 고창돼 온 것과는 상반되게 거론도 않기로 합의됐다. 이런 결과는 야당이 이 문제에 관한 당내 견해 조정이나 협상안도 준비함이 없이 명분에 끌려 제기했다가 물러선 야당 체질에도 일인이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현상에서 야당이 가장 큰 실질 수확으로 내세우는 소득세법 개정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다.
최초 과표를 「3만5천원 이하」에서 「5만원 이하」로 올리고 실요세율을 인하하는 내용의 정부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은 인적 공제액이 l만원 인상됐다고 하나 월9만∼10만원 소득층에만 혜택이 돌아갈 뿐 10만∼12만5천원선의 소득층에는 혜택이 별로 없다는 문젯점을 도외시한 것이다.
또 중산층 저소득층 보호에 역점을 둔다는 세법 개정이 끝내 50만∼40만원의 중·상류층에 가장 큰 혜택을 주고 25만원 이하에는 미미한 혜택을 주는 것으로 낙착된 것은 야당이 눈에 가장 띄기 쉬운 인적 공제액 인상이란 정치 효과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부가세 거래 양성화율을 5%에서 8%로 높게 잡아 2백35억원을 증액시키자고 내놓은 정부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예산에 거래 양성화율을 몇%로 책정하든 부가세수는 걷히는 것이며, 따라서 이 돈을 세입에 넣지 않았다고 하여 국민 세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를 세입에 올리지 않기로 한 것은 예산 삭감 규모가 가급적 크게 보이도록 하려는 정치적 「테크닉」에 불과하다.
선거법 개정에 있어서는 선거구 4개 증설이 우선 눈에 띄는 것이다.
대체로 인구40만 기준 1선거구인 통념에 비추어 보면 1백만이 넘는 4개구를 「우선」나누기로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80만이 넘는 선거구를 그대로 두기로 한 것은 균형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밖에 연설 횟수를 1회 증가할 수도 있게 한 것이라든가, 신문광고에 의한 선거 운동 허용 등의 개정 합의는 지엽적인 사항이며 현재 제도적으로 불균형하게 돼 있는 여야 의석수에 영향을 못 미치는 일이다.
또 현재도 제1, 2당의 특혜가 현저한 선거법을 후보 공탁금에 있어 정당 추천 3백만원, 무소속 5백만원으로 차등을 심화시킨 것이라든가 정당만이 신문광고를 낼 수 있게 한 것은 공화·신민 양당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양당이 이처럼 계속 제도적인 특혜를 받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결국 이번 협상은 타결의 시한에 쫓긴 채 여야의 체면치레 내실로 끝난 인상이다.<송진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