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57% 관세 폭격 후폭풍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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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미국 정부가 고율의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비 판정을 내림에 따라 통상마찰의 파고가 높아졌다. 특히 이번 예비 판정은 이달 말 예정된 유럽연합(EU)의 한국산 D램 관세부과 판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뿐 아니라 조선.제지 등 구조조정을 거친 다른 업계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사실상 첫 상계관세=이번 판정은 제소자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입장을 모두 수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출자 전환, 채무 면제, 차입금.세제 지원 등 마이크론이 제기한 전 분야를 그대로 인정, 무려 57%가 넘는 관세를 물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하이닉스 인수과정에서 실사까지 벌여 이미 하이닉스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본 상태다.

이번 판정은 사실상 우리 정부가 당한 첫 상계 관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철강분야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네 차례 상계 관세를 부과당했지만 모두 반덤핑 관세와 함께 이뤄진 것인 데다 관세율도 10% 미만으로 미미했다.

<표 참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이 경제 외적 측면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을 정도다.

관세 부과 후폭풍=예비판정 불똥이 하이닉스처럼 구조조정 과정을 거친 업계에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정부 관계자는 "다른 나라의 통상현안 초점이 조선과 제지업계 등에 맞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이후 이들 업계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외국에 비춰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지는 미국 측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미 업계는 특히 신호제지에 대해 우리 정부의 특혜가 있었다고 제기하고 있다.

신호제지 채권단에 산업은행이 포함된 부분을 문제삼는 것이다. 미국과는 또 자동차.철강.무선인터넷 플랫폼 등 10여개 분야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

EU와는 반도체 외에 조선 문제가 걸려 있다. EU는 지난해 10월 우리 정부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상태다. 역시 보조금 지급이 이유다. EU도 업계에 보조금을 지급했다며 우리 또한 맞제소를 검토 중이다.

주한 유럽연합 상공회의소는 2일 '2003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은행.제약.물류.자동차.환경 등 18개 부문에서 한국과의 통상 현안을 제기하고 있다.

반도체 관세율 인하가 관건=정부는 하이닉스 문제가 향후 다른 통상 현안의 잣대가 될 것이라고 보고 본판정에서 관세율을 최대한 낮추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메릴린치증권은 미 컴퓨터(PC)업계 로비로 미 정부가 관세 부과를 취소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미 정부가 열악한 자국 업계의 이익을 고려해 고율의 관세 예비판정을 내린 만큼 본판정에서 이를 취소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하이닉스 제품을 사용하는 미 PC업계를 동원해 관세율을 낮추는 데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 박상기 지역통상국장은 "미 PC업계도 자국 정부.의회에 불만을 전달한 만큼 관세율을 최대한 낮출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말 미 실사단을 대상으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적극 개진할 생각이다. WTO에 제소하는 문제도 신중히 고려 중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1년 이상 걸리는 등 실효성에 문제가 있어 정부는 이래저래 고민이다.

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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