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작가의 지적 활동과 작품에의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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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작가란 흔히 타고난다고 이야기한다. 말을 바꾸면 작가란 재능이 없이는 될 수 없음을 말한다. 실제로 문학 연구, 혹은 문학비평에 오래 종사했다고 해서 창작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창작의 재능과의 관련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의 재능이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가지고 나오는 것인가?
아마도 여기에 긍정적으로 대답한다면 작가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작가의 재능도 사실은 작가가 되기까지, 그리고 작가로서 죽기까지 작가 스스로의 문학적 관심과 그 관심에 의한 감수성의 개발과 그리고 거기에 따른 언어의 구사 능력의 조정 등 여러 가지 후천적 노력(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능 있는 작가」란 말은 작가 수업을 하지 않고도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작가란 누구나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였고, 독자인 것이다. 말을 바꾸면 작가는 언제나 독자이면서 작가라는 것이다. 어느 저명한 작가의 고백이 말해 주듯이 『작가란 본질적으로 작품을 읽는 사람』인 것이다.
때문에 한 사람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의 실질적, 혹은 정신적 체험과 함께 수많은 소설을 읽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소설의 독서를 통해서 독자로서의 작가는 자신이 읽은 작품과 자신이 살고 있는 삶, 혹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우주를 비교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작가가 나타난다는 것은 삶이나 세계를 보는 「관점」이 다른 새로운 작품의 출현을 의미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독창성이 없는 흉내내기 작가만이 있게 된다. 결국 작가의 지적 활동이란 다른 작품들의 독서를 통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성하고 고통스럽게 노력한 결과를 스스로의 체험에 반영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지적 활동이 작품에 나타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요소, 체제가 감추고자 하는 현실의 숨은 구조, 그리고 문학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 등을 내포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작품 이외에도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예를 외국의 저명한 작가들이 한 작품의 완성을 위해 오랫동안 「메모」해 놓은 『작가「노트」』따위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최근에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이러한 작가의 지적인 노력의 승리로 말해도 좋을 것인가?
아마도 이에 대해 「그렇다」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면 그 것은 폭력이 될 것이다.
좋은 작품이 상업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는 논리는 독자를 지나치게 멸시하는데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업적 성공을 거둔 여러 작품 가운데는 앞에서 말한 현실의 새로운 인식이나 숨은 구조도, 문학의 질문도 제시하지 않은 채 문학적 조작 장치의 뒷받침을 받고 있는 것들이 있다.
「발자크」가 일생 동안 1백권에 가까운 장편을 썼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많은 작품을 쓴다고 비난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작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독자를 이용하기보다는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작가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따라서 우선 많이 읽히는 작품을 무조건 기분 나쁘다고 하거나(최근의 뻥튀기 운운하는 것처럼) 내용 없는 감정적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작품 자체를 올바로 평가하는 일이 필요하고, 둘째로 비평가들이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별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며, 세째로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경직된 틀 속에 가두지 말고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서(작가가 자기 작품의 최초의 독자라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작품 하나 하나가 새로운 작품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일부로서 작품은 작가와 독자(비평가를 포함한)의 관계가 긴장 관계에 놓일 때 행복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작가는 작가의 칼인 언어를 번뜩이게 할 수 있도록 한없이 갈고 닦아야 하며 독자는 감정적으로 혹은 인상적으로 작품을 대하지 말고 번뜩이는 칼의 진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지적인 노력을 해야 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작가가 우위에 있다거나 독자가 우위에 있다는 따위의 문화적 패권 경쟁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70년대 작가들에 대한 일반적인 매도 현상은 당연히 지양되어야 하며 좋은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의 구분이 독자 측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김치수 <문학평론가>】

<차례>
①문학비평은 제구실을 다하고 있는가<이재선>
②계간문학지의 이상 비대 현상<김윤식>
③「70년대 작가」작품 그 「붐」의 배경<김우종>
④원고료 인상과 작품 수준의 함수<유종호>
⑤작가의 지적 활동과 작품에의 반영<김치수>
⑥「문학 시장」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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