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3)바둑에 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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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러햇동안 부산기계의 「리더」격이었던 김탁씨는 건강이 쇠퇴해지자 친척들과 조용히 살고 싶다하여 58년 강원도 묵호로 이사했다. 그러나 금씨가 가는 곳은 바둑 「붐」이 일었다. 원래 기골이 장대하고 천성이 활동적인 편이어서 노년기에도 그대로 둘 수가 없었던지 묵호를 중심으로 강릉·삼척지방을 관련지어「임해바둑제」를 개최하는 등 이고장 바둑을 일으켰다.
김씨의 초청으로 필자도 이고강 구경을 할 수 있게 되었거니와 김인8단을 비롯하여 기사들이 이 고장을 관광겸 다녀올 수가 있었다. 이「붐」을 타고 박종렬2단도 열을 올려 기사가 되었고, 또 각종「아마」대회에서 여러번 우승한 중암고교의 재학생인 조대지군도 묵호출신인데, 이때의 「붐」을 탄 기재의 발굴이라 하겠다.
또 삼척지방, 특히 동양「시멘트」공장 안에는 기우회가 조직되어 고재희 최창원 양5단과 필자는 이 고장 초청을 두 번이나 받아 여름피서를 그 곳에서 보내기도 했다. 이것이 모두 김역씨가 끼친 영향력의 파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원래 포부가 큰 김씨는 이 고장에 있기에는 너무나 그 활동무대가 좁았음인지 몇 햇만에 서울에 올라온 후에 조치동군을 친손자처럼 데리고 기원에 다니면서 바둑수와 함께 대국태도나 예의범절에까지 주의를 기울여 지도했던 것이다. 이보다 먼저 양연군을 국제신보로 하여금 후원하도륵 하더니, 그 다음에는 치동군을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그의 강남이었던 김수영5단은 1급의 실력으로서 장차 전문기사를 꿈꾸고 있었지만,친자식을 뒷전하고 치동군을 데리고 다녔으니 어떻게보면 이상하게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김씨의 안목으로는 친자식보다는 치동군을 키우는 것이 바둑계의 발전에 도움이 크리라고 판단했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치동군이 막사 6세매 도일수업하기로 결겅되자 필자와의 송별기념 3번기 (다섯점접바둑)를 국제신보로 하여금 주최토록 했고, 또 최재형씨(현한국기원 이사장)를 설득시켜 장학금을 내도륵 했으며, 그밖에 이성범씨 (전 한국기원 이사장)를 비롯하여 많은 인사로부터 여비를 받아 장도를 축하해주는 등 실로 친자식에게도 할 수 없는 성의를 표시했던 것이다.
그러니 치동군의 도일전 사범은 김탁씨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줄울 모르는 사람들이, 필자는 치동군의 삼촌이고 또 조양연5단이 친형이니까, 이 두 사람이 치동군을 가르쳐 주었겠지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필자가 가르쳐 준 것은 그나마도 김씨가 주선해서 만든 송별기념3번기때 뿐이었으며 김씨가 서울에 온 후 치동군이 62년8월2일 「기따니」(목곡실) 문하 백단돌파기념대회에 때를 맞춰 도일할 때까지는 김씨의 손을 잡고 살다시괴 했던 것이다.
당시 김씨의 강남인 수영1급은 『친자식은 돌보지않고 어떻게 남의 자식만 데리고 다닐까』이렇게 생각하며 야속한 마음이 들었음직하다. 그러나 모든 부자간이 그러하듯 제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의사가 제자식병은 못고친다』는 속담은 이러한 부자간의 단면을 알려주는 말일것이다.
그러나 김씨가 바둑계에 남긴 음덕은 헛되지않아 치동군이 오늘날과 같이 대성해 주었고,또 김씨의 친자식인 수영5단과 수장3단(얼마전에 승단하였고, 또「국수」전 본선에 진출했다) 형제가 다같이 전문기사로서 바둑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김씨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거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김수영5단은 선친의 뜻을 계승이나 한듯이 중앙 「매스컴」을 통한 보급활동과 또충암학원을 통한 고교생 바둑발전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이제는 고인이 된 김탁씨지만(73년작고) 지금은 지하에서 득의의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김씨가 떠난 뒤의 부산기계는 한동안 뚜렷한 「리더」가 없는 채 약간의 혼선이 빚어진 듯 했으나요즘은 양건모3단이 자리잡고 명빈 그대로 부산기계의「리더」로 활약해주고 있음은 바둑계 전체를 위해서도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얼마전의 「왕위」전도전기 제3국이 울주의 산양에서한 유지의 특별초청으로 열렸는데 이것은 양3단에 의한 유치로 이루어진걸로 알고 있다.바둑계가 보다 활발성을 띠기 위해서는 이런 「리더」가 옅심히 뛰어주느냐 않느냐에 많이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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