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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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이은 풍작과 쌀 증산은 쌀의 자급이라는 오랜 숙원을 성취시켰으나 다른 한편에선 재정부담과 통화면에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사실 그동안 관·민 합심의 피나는 노력으로 급격한 증산을 이룩하여 쌀 부족 문제를 완전 해결한 것은 획기적인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으며, 특히 금년에 단위 면적당 쌀 수확고가 세계최고인 단당 5백31㎏을 기록한 것은 특히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다. 당초 2차5개년 계획에서 목표했던 식량자급의 큰 실마리가 이제 와서 풀린 것이다.
쌀의 증산과 자급은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이지만, 이로 인한 여러 가지 경제적 부담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쌀 증산으로 인한 경제적 문제는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본은 계속 누증되는 고미재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재정부담 또한 크다. 궁여지책으로 식량청이 중심이 되어 쌀 덜 생산 「캠페인」까지 벌이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아직 한국의 쌀 과잉문제가 일본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추세는 비슷한 만큼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문제가 더 심화하기 전에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 나라는 지금 쌀의 자급에서 과잉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금년의 풍작으로 쌀 공급은 급속히 늘어나겠지만 수요는 정체되어 쌀 재고가 이미 1천만 석을 넘었고, 내년엔 1천6백만 섬에 이를 전망이다.
쌀의 과잉은 필연적으로 가격하락을 초래, 산지쌀값은 수매가보다 가마당 1만원이나 밑돌고 있다.
쌀값하락 때문에 정부는 2백만 섬을 더 사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수매 절대량이 미흡하고, 또 대전도 내년에나 지급한다는 점에서 풍년기근을 겪고 있는 농촌에 흡족한 도움이 되긴 어려울 것이다.
쌀의 과잉기조는 일단 정착화 할 것이라 봐야 할 것인데, 이의 가격지지나 보유미의 누증에 따른 재정부담 및 통화역력은 심각할 것이다.
내년 예산도 명목적으론 균형으로 짜여있지만, 양곡기금 때문에 실질적인 적자예산이며 통화증발도 주로 양곡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당국은 쌀 과잉을 소비촉진으로 줄인다는 방침아래 쌀 막걸리의 시판허용·도정도 제한해제 등의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봐 공급과잉기조를 해소하는덴 한계가 있는 것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은 소득증가와 더불어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급격한 쌀 증산을 도저히 막아낼 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쌀 과잉문제는 생산조정이나 수출·대체수요의 개발문제로 귀착된다.
생산조정이나 대체수요의 개발은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데 쌀은 남는 반면에 밀·콩 등 외곡 도입액이 1년 5억「달러」를 상회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은 갖고 있다.
이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지금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쌀 수출은 당장은 가격 면에서 경쟁이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경쟁력 강화나 시장개척의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며, 한국에 대해 높아지는 원조요구의 대응수단으로 쓰는 방법도 일단 고려대상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현 추세로 가면 앞으로 2∼3년 안에 쌀 문제가 심각해질 전망인 만큼, 양정전반에 걸친 전면적인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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