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고교의 낙후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교육 정책의 기본 방향이 민주주의의 생활화와 함께 기술 및 기능 인력의 개발에 집약돼야함은 당연한 요청이다.
그런데도 그 동안의 문교 시책은 이 같은 발전의 향방과는 반드시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음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 비근한 실례의 하나로 지난 수년간의 고교 증설이 인문고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실업계 고교의 증설이나 확장은 도리어 상대적인 후퇴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는 이 나라 교육 정책이 사회 발전이나 급변하는 시대적 요청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려는 자세를 결한 채 항상 무사안일주의에 젖은 소극적 대응을 일삼아 왔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하면 과언일까.
산업 구조가 고도화돼 감에 따라 산업 인력의 공급원으로서 실업계 교육 기관의 질·양 양면에 걸친 강화 요구는 갈수록 가중된다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
앞으로 추진될 4차 5개년 경제 개발 계획 기간 중에 소요되는 기술 인력만도 총 1백31만8천1백명인데 비해 현재 공급 능력은 56만5천5백명으로 75만2천6백명이나 부족한 실정이다.
이처럼 기술 인력의 부족이 심각하게 문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교육 정책은 도리어 기술·인력에 관한 수요·공급간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이해키 곤란하다.
고교 학생의 인문계 편중 현상은 소년부터 실시된 중·고교 진학 무시험 추천제가 빚어 낸 대표적 부작용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무시험 추첨제로 진학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인문고에 대한 진학 가수요 현상은 눈에 띌 만큼 가속화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국은 이 같은 가수요 현상을 적극적으로 해소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시설비가 덜 드는 인문고를 증설하는 안일을 택함으로써 실업고 학생 수만 감소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인문고에 편중된 학생수의 증가 현상은 인문고가 대학 진학을 주된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진학 희망자를 더욱 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재수생의 증가 현상까지도 빚고 있다. 따라서 인문고에 쏠린 진학 경향을 실업계 고교로 유인하는 적극적 시책을 세운다는 것은 기술 인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서는 물론 근자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재수생 문제의 해소를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실업고의 대대적인 확장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그 전제 조건이며, 정책은 마땅히 이 문제 중대성에 초점을 맞추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우리 나라 실업계 고교는 우선 교사 수에 있어서 조차 법정 정원의 55% 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각급 학교 중에서도 가장 심한 교사 난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습 실험 시설 보유 상태 등 내부 시설은 40·3%, 외부 시설은 60%에 불과하다.
여기다 실습 실험비 마저 중화학계가 44·6%, 경공업계는 40% 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미비한 인적·물적 시설로써 어찌 충실한 실업 교육과 쓸모 있는 기술 인력의 배출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실업 교육의 강화는 국가가 특별 예산을 세워 기존 및 신설 실업계 고교에 대한 대담한 시설비 보조와 장학금 제도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함께 근본적으로는 고졸 학력만으로도 취업이 가능한 직업 범위의 확장과 고졸자에 대한 고용 조건의 개선에 대담한 유인 체제를 마련하도록 정부가 그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
기능 인력의 중요성을 아무리 말로만 역설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양성 기관인 실업계 교육기관이 이처럼 허울뿐인 상태에 버려져 있고 사회적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 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실업계 학교와 기능인 우대를 위한 일련의 종합 대책은 문교 시책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하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