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하씨의 장승 순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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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필이면 장승을 순례해 뭣하느냐고 묻는다. 73년부터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며 장승이 서있는 곳을 1백60여개소 확인해 모두 사진으로 담아 왔다.
본래 산을 좋아해 돌아다니다가 이젠 장승 찾는 일이 취미 이상 본업처럼 됐다. 1년이면 30회쯤 지방을 여행하며 장승이 있다는 소문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간다.
물론 쉽지 않다. 혼자서 함양 벽송사 장승을 찾아 가다가 길을 잘 못 들어 한밤중 지리산을 헤맨 기억은 지금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지만 장승은 자꾸 인멸돼갈 뿐 더러 후학들이 이런 고역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전국에 산재하는 것을 다 파악해 놓을 작정이다. 과거엔 마을이나 절 입구에 흔히 서 있던 민속 조각품이었지만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전래의 풍물이다. 지방 주민들은 이에 대해 아주 무관심하다.
그래서 기차에서든 자동차 속에서든 큰 소리로 장승얘기를 꺼낸다. 물론 사진 몇장을 준비했다가 보여주곤 한다.
그 때서야 시골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며 그 소재를 일러준다. 하지만 묘지의 문인석이나 산야의 미륵불을 잘못 가르쳐주어 실망시킨 적이 부지기수인데, 어쩌다가 목표물이 찾아지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경제학도로서 젊어서는 중학교 교직에 있었고 그 동안 제혁·수산 등 사업하느라고 얽매이다가 늘그막에 새로운 취미로 보람을 얻었다. 같은 동년배끼리 이런 문화재 찾기 모임도 마련했다.
장승의 실물은 단 한개도 갖고 있지 않지만 사진이 쌓이고 문헌·자료·「카드」도 2천장이나 쌓여 자료집을 냈으면 하는 욕심이 난다. 그 동안의 소득을 서로 나눠 갖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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