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자급…이제부터가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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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농수산부는 주곡의 자급달성이란 정책목표를 최대의과제로 삼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말은 큰 의미를 잃는 것 같다. 자급단계를 지나 재고누증으로 인해 떨어지는 쌀값을 어떻게 받치느냐가 이제는 커다란 정책과제로 등장하고있기 때문이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주곡자급률은 90%를 넘지 못했다. 풍년이 들었다는 74년에도 쌀 생산량 3천86만섬에 대해 소비량은 3천2백22만섬으로 부족 분을 메우기 위해 20만t의 외미를 들여와야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주곡의 자급달성에 양정의 목표를 설정하고 일면 통일계 다수확품종의 재배확대·고미가 정책의 유지 등 증산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 한편 30%혼식·7분도 실시 등 소비규제정책을 동시에 펴왔다.
그러나 쌀 생산이 자급단계를 넘어 잉여시대를 맞게됨으로써 양정은 그 정책기조의 전환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75년의 쌀 생산량은 3천2백42만섬에 달함으로써 소비규제로 줄어든 76년의 수요량 3천1백51만섬을 충족시키고 남았고 작년에는 3천6백21만섬을 생산, 올해의 수요량 3천3백34만섬을 크게 앞질렀다.
올해에는 다시 작년보다 약3백만섬이 늘어난 3천9백만섬을 수확할 것으로 보여 내년의 수요 3천4백31만섬을 채우고도 4백만섬이 더 남아 돌게됐다.
잉여 분의 누적으로 쌀 재고량은 10월말 현재 1천2백만섬에서 내년에는 1천6백만섬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이 같은 여건변화에 대응, 이미 지난 1월에 분식 일을 없앤 데 이어 10월에는 7분도를 폐지하고 그 동안 금지했던 쌀 주조를 다시 허용키로 하는 등 소비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혼식은 아직 폐지되지 않고 있으나 그 폐지도 시기만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앞으로 소비규제의 완화라는 소극적 입장에서 벗어나 쌀 소비를 촉진, 현재 현1천3백만섬에 달하는 보리소비를 쌀로 대체할 구상이다.
보리는 생산비에 비해 수익성이 열위인 만큼 그 생산을 점차 줄이고 보리경작지에는 수입대체작물인 밀을 경작토록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구상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보리에 대신할 답리작이 가능한 밀의 신품종이 개발되지 않고 있는 데다 전체 식량수급사정은 아직도 자급률이 75%수준에 머물러있어 쌀이 다소 남아돈다 해도 보리생산을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보리혼식폐지를 미루고있는 이유도 이 같은 보리소비의 필요성과 관련지어 설명되고있다.
정부의 식량수급에 관한 기본구상이 쌀 소비 확대를 예정하고있는 만큼 현재 쌀 재고가 누적되고 있다해도 증산정책은 계속 추진될 수밖에 없다.
소비정책이 방향을 바꾼 반면 증산을 목표로 하는 생산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미곡증산에 견인차의 역할을 해온 고미가를 기조로 한 가격지지정책이 물량에 눌려 정책수단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증산유인의 모색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즉 이제까지는 수확기에 비싼 값에 정부가 쌀을 수매, 단경기에 방출함으로써 쌀값을 적정 선으로 유지했으나 생산증대로 수매수요가 대폭 늘어남에 따라 정부재정이 더 이상 가격유지기능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정부는 올해 추곡수매가 인상률을 13·2%로 억제하는 한편 수매물량을 작년의 7백25만섬에서 9백50만섬으로 늘렸으나 산지쌀값은 수매가보다 가마당(80kg)1만원이나 밑도는 1만6천원 선까지 떨어지고 있다.
연간 5억5천만「달러」(76년)의 양곡을 도입해야하는 실정이면서도 쌀이 남아돌아 쌀값 폭락을 가져오는 현실에서 양정 부재를 실감할 수 있다.
앞으로의 쌀 증산은 소비와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가 이미 구상한 소비증대정책을 과감히 밀고 나가는 한편 영농의 경쟁력강화라는 보다 차원 높은 정책목표를 설정, 새로운 사태발전에 대비해야할 것이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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