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진료와 대리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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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진료행위는 의사에게 주어진 고유의 권리인 동시에 의무다. 의사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 치료과정에서 신체적 완전성까지도 일부 해칠 수 있는 업무권마저 갖는다.
그러나 의사는 이와 함께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환자에 대해 최선의 성실과 주의를 다해야할 의무를 지고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가 의사의 업무권에 일방적으로 동의하며, 귀중한 생명을 내맡기는 것도 의사의 이 같은 의무의 성실한 이행이 전제되는 것으로 믿기 때문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야말로 그 어떠한 인간관계보다도 「신뢰의 원칙」이 존중되는 도덕적 관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의료행위를 인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의료인에 대한 이러한 도덕적 신뢰감의 표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나마 우리 나라의 의료인들이 왕왕 사회의 기대를 엄청나게 저버리는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우리에게 비정의 실망감을 맛보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작보된 일부 부산의 개업의들이 자격 없는 조수 등에게 대리진료를 시켜오다 검찰에 의해 입건 또는 구속됐다는 보도는 그것이 비단부산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바로 전술한 도덕적 신임에 대한 배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상, 우리 나라 상당수의 개인병원들이 오직 임금이 싸다는 이유 때문에 무자격간호원을 고용하고, 엉터리 조수에게 환자의 진찰·처방·치료행위를 대신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지 오래다. 또 항간에는 의사면허를 돌팔이에게 맡기고 매달 일정한 명의대여료를 받는 사례도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유사한 경우는 의사에게도 있다. 우리 나라의 약국 및 약품취급업소에서는 의약의 지식이 전혀 없는 집안 식구나 종업원이 대리조제행위를 해오다 약화를 빚는 사고까지 경향 각지에서 속출하지 않았는가.
지난 6월 부산과 광주·단양일대에서 거의 동시에 4건이나 빚어진 처방약 살인사건도 15세 소녀에게 독극약 소분을 맡긴 데서 비롯된 사고의 한 실례이다.
이와 같은 사건들은 모두가 의사와 약사가 귀중한 인명을 다루는 의료인으로서의 윤리와 책임을 처음부터 외면하는데서 빚어진 것으로 의료인 각자의 심각한 반성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인의 진료행위는 결과의 문제보다 언제나 그 과정이 더욱 중요시된다. 설사 치료중 환자가 생명을 잃는 경우가 있다하더라도 진실로 최선의 노력과 주의 의무를 다한 것이 거증될 때는 형사상책임도 경감되거나 면제된다.
그러나 문제된 이 모 이비인후과의 경우처럼 진료행위 자체를 무자격조수에게 전담시키고 의사자신은 사교활동에나 정신을 쏟고 있는 유의 무책임한 행위는 환자의 신뢰를 깡그리 짓밟고 의료인으로서 주의 의무를 태만히 한 반윤리적 소행일 뿐만 아니라 법률적으로도 용서 못할 고의적 불법행위임이 틀림없다.
사회적으로 가장 근원적인 신뢰를 모으고 있는 의료기관과 그 경영자가 이 모양으로, 전락해 간다는 사실은 국가질서 전반에 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국민보건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의료인의 이 같은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마땅히 면허를 취소하고 형사적으로도 준엄한 응징이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모든 의료인들도 투철한 직업 윤리의 진작을 위해 비상한 각성과 노력을 기울여 의료계 풍토를 정화해 나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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