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정상국가의 國情院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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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나라가 정말 위기에 처해야 사람들은 진정으로 '나라 일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되묻게 되는 모양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며 잘 나가던 나라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됐는지, 우리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은 날로 혁신을 거듭하며 번창하고 동남아 국가들도 발빠르게 국제화로의 전진을 거듭하고 있는데, 왜 대한민국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경제와 국가안보가 위기국면으로까지 치닫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역대 정권은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해 국민을 속이고는 결국 국민과 나라야 어찌 되든 자기들 뱃속만 채우고 떠나버렸다. 그래서 정권이 끝나면 국민을 기만하고 자기 잇속만 챙긴 그 추악한 일들에 대해 심판하자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 인권탄압 문제 지나치게 부각

국가의 존재 의의는 공동체를 유지.존속시키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행복하게 상생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있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이 국가 운영의 불변의 이치라는 말이다.

나라 일이란 어떤 개인의 신조를 실험하거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것일 따름이다. 아무리 허장성세(虛張聲勢)로 떠벌려도 경제가 내려앉고 일자리가 줄어들며 나라가 불안해지면 그 정권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

국가안보와 통일은 헌법상으로도 중요한 가치인데, 역대 정권은 그들 편한 대로 이를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그 진정한 의미와 가치까지 파당성에 오염되어 우습게 돼 버렸다.

통일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합의 도출을 위해서도 대북 송금비리 사건의 내막은 철저히 조사해 하나도 숨김없이 국민에게 알리고, 법적 책임을 질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가안보도 마찬가지다. 국가안보나 통일과 같은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정권놀음을 하는 짓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방정책과 국가정보기구의 활동 역시 더 이상 집권자의 정치놀음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국가정보기관의 문제를 인권탄압의 문제로만 부각시켰지만, 결국 김대중 정부도 이를 정권 유지와 집권세력의 이익추구를 위한 사적 도구로 변질시켰다. 그 결과 국익을 위한 정보기관의 진정한 역할은 해체되고 부정적인 이미지만 남겨 놓았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각국 정보기관의 치열하고도 고도의 전문적인 활동에 비춰 보면 우리 정부가 그동안 한 짓은 치기 어린 장난 같은 한심한 지경에 놓여 있다.

현 단계 국정원의 개혁논리는 '정상화'에 있다. 정보기관을 정권 유지 도구로 이용하던 폐습을 일소하고 국익실현을 위한 진정한 국가정보기구로 만드는 것이고, 대외활동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정상국가의 국가정보기구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권의 주구로 앞장서 날뛰던 인물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철저하게 하고, 그간 양성한 실력있는 전문정보인력을 적재적소로 배치하며, 전문정보인력의 체계적인 양성.충원과 활동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한다.

국정원은 국내정보를 가지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을 할 것이 아니라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한 대외활동 역량의 강화와 테러 방지와 같은 국가 안전에 힘써야 한다.

오늘날 안보환경에서 보건대, 국내와 해외가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나 종래 대통령의 충견으로 활동하거나 특정 지역 출신 사람들이 조직을 장악한 사적 집단으로서의 성격은 이번에 확실하게 혁파해야 한다.

*** 高位공직 불법행위 통제해야

국가안보라는 관점에서 보건대, 우리는 대통령을 포함해 고위공직자의 국가기밀누설, 간첩행위, 국외세력을 통한 정치자금 세탁 등과 같은 국익침해적 범죄행위를 통제하는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

그간 검찰의 정치종속적인 태도, 국회의 대통령에 대한 종속, 특검제의 비활성화 등으로 인해 이런 국익침해적 행위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은 이제 검찰과 함께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불법행위를 통제하는 기구로서도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국정원이 일찍 자기 위상을 바로 정립했어도 김대중 정부에서 저질러진 각종 게이트 사건이나 대북 비밀송금 사건 같은 행위는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국정원의 개혁은 민주화에서 더 나아가 정상화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鄭宗燮(서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