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경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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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월말 통화량이 작년 말 비29·7%에 달하자 일반대출의 전면중단·당좌대월 한도의 50%감축·5백만원 이상 대출에 대한 재무장관승인 등 여러 강력한 긴축조처가 발동되었다.
금년 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물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과잉유동성의 흡수가 시급하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특히 근자의 물가강세는 통화팽창에 의한 초과수요에 크게 기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통화는 계속 늘어 9월말 현재 연간목표인 28%선을 돌파, 연율 50%선에 이르고 있다. 9월엔 추석 등 계절적 요인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통화가 심각한 팽창 상태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또 앞으로 4·4분기엔 추곡수매, 연말결제자금 등 자금수요가 왕성하리란 점을 감안하면 이미 29·7%나 늘어난 통화를 28%내로 줄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따라서 연말까지 3개월 동안에 통화를1·7% 줄이려면 비상대책을 강행해야 할 것이다.
통화당국이 외화수입에 따른 원화 대전인출을 연말까지 원칙적으로 동결하고, 이번 일반대출중단 등의 긴축 조처를 발동한 것은 이러한 비상대책의 일환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통화의 긴축이 제아무리 절실하다 하더라도 급작스런 수축조치로 인한 부작용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금년 통화증가율 28%의 준수는 연중을 통해 통화를 점진적으로 늘려 연간증가율을 거의 평준화하고 이것을 연말에 가서 28%선에 접근시킨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또 사실 이런 식으로 통화가 늘어나면 물가에 큰 충격이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연중통화증가율이 격변, 한때는 연율50%선에 달하고, 이것이 비상긴축으로 격감되어 연말에 설혹28%선을 지킨들 안정기조 유지엔 크게 도움이 못될 것이다. 통화팽창도 나쁘지만 급격한 통화수축도 이에 못지 않게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 아닌가.
과거의 경험이나 현재의 금융체질로 볼 때 금융긴축의 가장 큰 주름은 내수중소기업에 가기 쉽다. 금융긴축이 전 부문으로 고르게 확산되면 그 충격도 훨씬 적으나 이것이 어느 특정부문에만 집중될 땐 심한 편중과 경색의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수출·중화학·방위산업 등 도저히 손을 댈 수 없는 큰 덩어리의 금융성역이 많다는 점에서 갑작스런 대출회수는 내수중소기업에 집중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따라서 통화를 줄이려면 금융부문만 손을 댈 것이 아니라 재정·외환부문도 동시에 하고, 금융부문에서도 전산업에 골고루 긴축이 펴지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 금융긴축 집행에 있어 5백만원 이상 대출은 재무장관에 직접 보고토록 한 것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통화조절을 위해선 중앙은행의, 간접통제수단이 엄연히 있고, 또 실질적으로 은행별 여신한도 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이것도 부족하여 재무장관이 개별융자까지 직접 통제하게 된다면 금융「메커니즘」에 큰 결함이 있거나 금융정책수단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금년의 정책기조인 안정기조위의 적정성장이 실제 집행 면에선 외면되어왔으며 관계당국 간이나 또 금융기관에까지 적정통화유지에 대한 「컨센서스」가 안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과잉 팽창된 통화를 줄여야 한다는 방향은 타당한 것이지만, 무리한 긴축강행으로 특정부문에 일방적 피해가 가는 사태는 소망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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