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일보한 환경보전법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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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마련한 환경보전법안은 그 기본 성격이나 대상·원리 등의 제 측면에서 종래의 태도에 비하면 상당히 진보적인 의미가 엿보인다.
이제까지의 환경문제에 대한 법 체제가 단순히 공해의 방지·제거라는 국부적·미시적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던데 비해 이번 법안은 자연 보존과 환경의 이용·관리를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다루려는 접근 방법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공해 방지법은 63년11월 처음으로 제정 공포된 이래 71년1월22일 일부 수정 강화됐으나, 공해 대책에 관한 기본 이념조차 규정하지 못한 채 외국의 규정을 한두 조항씩 빌어다 엮어 놓은 데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법리 구성의 엉성함은 말할 것도 없고, 법 시행에 필요한 적절한 기구나 요원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 사이 이 나라에서의 공해 문제의 양상도 날이 갈수록 다양화·심각화 해 감에 따라 사회 일각에서 환경법 체계의 정비를 요청하는 소리가 고조돼 왔고, 특히 본란이 시종일관 그 필요성을 강조해 온 것은 다 아는 바와 같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 당국이 포괄적인 개선책을 마련한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선진제국의 예를 보더라도 미국의 「연방 환경 정책법」 이라든가, 일본의 「자연 환경 보전법」, 「스웨덴」의 「환경 보호법」 등은 모두가 단순히 공해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증진시키고 자연 환경 전반에 대한 피해 방지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 개발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쾌적한 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포괄적인 환경 정책을 수립하게 된 것을 크게 다행으로 여기고 싶다.
인간이란 본래 청결과 순수함을 원하는 자연성과 편익과 풍요를 추구하는 경제성이란 이율배반적 특성을 갖는데서 환경문제가 파생되는 것이다.
즉 당장 실감할 수 있는 일상의 이익을 좇는 나머지 그에 부수되는 자연의 피해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제성에 치중하다가 하천·바다·토양 등이 오염되어 쓸모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난 뒤에 비로소 정화하려 해도 그것은 이미 불가능하기가 일쑤다. 설사 가능하다 해도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경비가 든다. 그래서 환경 문제에는 오로지 예방이라는 답변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환경보전법의 제정·시행만으로 예방의 효과를 다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지나친 낙관일 것이다.
환경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에서는 법규 외에도 환경 보전 계획의 작성·대책 기구의 완비·재정적 기반의 확보·환경 관계 과학 기술의 진흥·전문 요원의 양성 등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이 아직도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특히 환경 대책 기구의 다기화로 인한 환경 행정의 비효율성은 시급히 시정되지 않으면 안된다. 예컨대 현행 제도는 수질 오염 방지 문제 한가지만 보더라도 오염 규제를 위한 공해 방지법·오물 청소법 등은 보사부에서 관장하고, 수질과 직접 관계되는 수도법·하수도법·하천법·항만법 등은 건설부에서 다루고 있다. 또 농약 관리법은 농수산부가, 외자 도입법은 경제기획원이, 공장 신고법은 상공부에서 취급하고 있다.
이처럼 환경문제에 관한 하나의 「아이템」을 여러 부처가 저마다 독자적인 개별 이익과 목적에 따라 달리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예컨대 서울시가 공해 방지법에 따라 단속을 하고 시설 개선 명령이나 조업 정지 명령을 내리고자 해도 주무부인 상공부나 농수산부는 국가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승인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비단 환경 행정에만 특유한 것이 아니지만, 특히 환경 행정의 경우에는 그 사정이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이 같은 기구의 정비가 먼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모처럼 마련되는 환경 보전법도 자칫 「그림의 떡」으로 전락해 버리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렇기 때문에 차제에 복잡 다기 한 환경 행정 체계도 일사불란하게 정비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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