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시스템이 우릴 구한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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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
권석천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권석천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대국민담화를 발표한다고 한다. 담화에는 국가 재난안전시스템 개편과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 방안 등이 담긴다고 한다. 어제는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난상토론을 벌였고 새 총리 인선과 내각 개편이 뒤따른다는 풍문도 들린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리셋(reset)될 거라고들 하는데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지 않는다. 왜일까?

 세월호 침몰 후 우린 지겹도록 시스템을 말해왔다. 재난대응 시스템, 구조 시스템, 해경 시스템, 관료 제도…. ‘국가 개조’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결국 리더요 사람이란 사실을. 아무리 좋은 시스템, 좋은 제도가 있다 해도 그것을 제대로 작동시킬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면 시스템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촌각을 다퉈야 했던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리더는 보이지 않았다. 선장은 해경 구조선에 올라타면서 배 안에 있던 동료 승무원과 승객들에게 탈출하라 외치지 않았다. 해경 함장은 선장에게 “당장 배로 복귀하라”는 법의 엄격함을 보여주지 않았다. 진도로 간 장관들은 컵라면이나 치킨으로 각인됐을 뿐 실종자 가족들의 슬픔에 다가서지 않았다. 총리는 가족들에 에워싸인 차 안에서 내리지 않았다. 모두들 한발씩 비켜서 있었다.

 지나간 일을 왜 다시 들추느냐고? 그렇다면 앞으로의 얘기를 해보자. 시스템 개혁. 관피아 척결. 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모양 갖추기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진짜 개혁이 되려면 누군가 목을 내걸고 몸을 던져야 한다. 그 누군가는 어제까지 좋은 동료, 친한 후배였던 관료들을 적(敵)으로 돌려야 하고, “미친 놈” 소리도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전관예우의 감칠맛 따위는 포기해야 한다.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고 할까. 그런 총리감, 그런 장관감이 있을까. 한 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현장에, 시스템에 무슨 문제점이 있는지는 공무원들이 가장 잘 압니다. 머리 좋은 그들이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하려고 할까요? 현실은 모른 채 그럴 듯해 보이는 이론을 제시해줄 교수들 부르겠죠. 그렇게 또 위기를 넘기겠죠. 그것도 아주 싼값에….”

 시스템은 중요하다. 다만 시스템이 우릴 구조해줄 것이라 믿는 건 오산이다. 착각이다.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는 건 선장, 해경, 장관, 총리,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몸과 마음을 바쳐 움직여줘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 스펙이 화려하다고, 신망이 높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진정성과 용기, 열정과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고통스럽게도 우리가 희망을 본 건 세월호 내부였다. “선원이 마지막이야. 너희들 다 구조하고 나갈 거야.” 스물두 살 승무원 박지영은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단원고 여학생에게 입혔다. 승무원 정현선, 아르바이트생 김기웅, 단원고 학생 정차웅·양온유·김주아·최덕하…. 젊은 그들은 끝까지 승객 곁을 지켰고, 친구를 구하려고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갔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선체 밖에서 맴돌기만 하던 어른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의 또래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믿음을 버려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연령별 인기 뉴스’를 보면 다른 연령대들이 차례로 다른 기사로 옮겨간 뒤에도 40대 여성과 10대 여성의 인기뉴스 1위는 여전히 세월호 기사다. 40대가 비통한 엄마의 심정이라면 10대는 친구들이, 자신이 배 안에 갇혀있는 듯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전쟁에서 승리하는 장군들의 공통점은 부하들에게 ‘저 사람을 따라가면 내가 살 수 있다’는 공감을 심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에게 정부만 믿으면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는가. 계획도와 청사진으로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을 리플레이하는 것 아닌가. 거울 앞에 서듯 정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권석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