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본 통계] 2002년 국민소득 1만달러 돌파 알고 보면 원화 환율 내린 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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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5년 만에 1인당 국민소득이 다시 1만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박수를 크게 칠 일은 아니다. 우리의 독자적인 성적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은 1만13달러. 숫자로는 2001년보다 1천13달러(11.3%) 늘어났다. 원화를 기준으로 한 1인당 소득은 1천2백53만원으로 1년 전보다 7.8% 늘었는데, 미국 돈 달러화로 계산하니 증가율이 더 커졌다.

원화 가치가 3.1% 높아진 덕(연평균 원화 환율은 1천2백90원83전에서 1천2백51원24전으로 낮아짐)을 톡톡히 본 것이다. 국민소득 증가분 1천13달러 중 3백달러는 환율 덕분이라는 얘기다.

1인당 국민소득을 산출할 때 환율 덕을 크게 본 적은 또 있었다. 바로 1990년대 중반이다. 95년 처음으로 1만달러 고지를 넘었는데 당시 환율은 7백71원4전. 당시 명목 국민총소득(GNI)이 3백76조원이었는데도 거뜬히 1만달러 고지를 넘었다.

이제 우리도 '고(高)소득국'(1인당 국민소득 9천2백66달러 이상)이라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원화로 그전보다 달러를 넉넉하게 바꿔 해외여행 길에 올랐다.

이듬해인 96년 대통령 선거 공약대로 선진국 클럽(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나라 곳간(외환보유액)이 바닥나면서 환란을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고개에서 시련을 겪는 나라가 적지 않다. 우리는 그 고개에서 벌써 8년째 멈칫거리고 있다. 2만달러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6~7년 안에 2만달러 사회로 진입하려면 10년 가까이 실질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5%대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당장 올해부터 5%대 성장을 낙관하기 어려운 판이다. 이라크 전쟁과 북핵 문제, 과도한 가계부채와 흔들리는 금융시장 등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라는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언제 소낙비가 내릴 지 모른다.

올 1분기 성장률은 잘해야 4%대에 머물 전망이다. 그러니 다시 1만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 같다. 지난해에는 환율이 떨어져 예상 밖으로 1만달러를 넘어섰는데 올해는 환율상승 폭이 성장률을 웃돌면서 달러화 환산 소득을 끌어내릴 것이다.

이런 판에 그 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높은 저축률마저 내리막이라서 걱정이다. 지난해 총저축률은 29.2%로 19년 만에 처음으로 30%대 아래로 떨어졌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서 2만달러가 되는데 싱가포르가 5년(89년→94년), 일본(81년→87년)과 홍콩(88년→94년)은 각각 6년이 걸렸다. 우리는 벌써 이 기간을 초과했다. 과연 앞으로도 얼마나 더 걸릴까. 자아도취에 빠져도, 자신감을 잃어도 곤란하다. 지금 모두 경제하는 마음부터 추스르자.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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