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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선 사건을 계기로 본 미국의 기소·재판 절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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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박동선 씨는 미 연방 대 배심에 의해 기소됐다. 박씨가 도미를 거절하고 있어 사건의 처리가 어찌될지 모르지만 기소나 재판절차가 우리나라와 다르다.

<기소권자>
미국 내 법에 따르면 형사피의자를 기소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부정·부패·독직·뇌물 등의 중죄가 아니면 통상적인 기소절차를 따른다.
우선 수사권만 가지고 있는 경찰은 현행범을 포함, 신병확보의 필요성이 있는 피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미국의 경찰은 영장을 발부 받아 체포하는 경우보다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가 더 많다.
경찰에 체포된 피의자는 조사를 받은 후 치안판사(Ma-gistrate & Commissio-ner)가 심리하는 예심에 회부되며 검사는 소추권만을 갖고 있다. 치안판사는 구속여부의 타당성을 심리한다.
판사는 법정형이 징역 l년 이하의 경범피의자에게는 본인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검찰이 기소하게 하고 징역 1년 이상의 죄목에 대해서는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대 배심(Grand Jury)을 구성한다. 경범이라도 피의자가 검사기소를 거부하면 대 배심에 넘겨진다.
미 연방정부와 각주의 절반이상이 대 배심에 의한 기소 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대 배심은 16명에서 23명의 각계에서 무작위로 뽑은 건전하고 양식 있는 비 법률전문가로 구성돼 당해 사건의 심리에만 권리와 의무가 국한된다. 기소를 결정할 때는 배심원 12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는 하한다수결제를 택하고 있다. 미국의 전 형사사건의 3분의2가 대 배심을 거친다. 기소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대 배심은 검사가 작성한 서면소추상과 증거상안(Bill of Evidence)에 의거, 일종의 사실심리를 하며 이것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면 피의자를「증인」이란 이름으로 출두시켜 기소 상 안의 사실여부를 확인한다.

<대 배심의 권한>
이상은 통상적 기소방법이며 경찰이 쉽사리 손댈 수 없는 정치적 사건에는 다른 방법이 적용된다.「워터게이트」사건·박동성 사건과 같이 정치적 사건이거나 방대한 수사가 필요한 사건은 경찰의 수사·예심·검찰의 서면소추 장 제출 등의 절차를 생략하고 판사(이때는 Judge라고 함)가 직권으로 곧장 대 배심을 소집, 수사→심리→기소의 과정을 한꺼번에 관장한다. 박 사건도 연방지법판사가 직권으로 대 배심을 구성한 것이다.
이 경우 대 배심은 연방정부에 대해 특별예산을 요청할 수 있고 수사기관에 특정사건의 수사목적과 방향을 하명할 수 있다. 또 수사관을 직접고용·지휘할 수도 있으며 특별검사나 특별조사반을 임명활용하기도 해 막강한 수사권을 행사한다. 사건 관계자는 모조리 소환할 수 있으며 불응하면 사법 모독 죄로 처벌까지 한다.
「워터게이트」사건을 맡은 대 배심은「재워스키」를 특별검사로 임명했고 여러 개의 특별조사반을 편성했으며 4백여 명의 수사관을 지휘·활용했다.
박동선 씨를 기소한 대 배심은「렐」법무장관에게 수사를 명령, 기소 상 안을 제출케 했고 이것에 의거, 기소결정을 했다. 현재「재워스키」는 대 배심이 임명한 특별검사가 아니라 미 하원이 위촉한 의회의 특별 조사 관이다. 그러나 대 배심은「재워스키」의 조사 결과를 보고 받을 수 있고 이것을 증거나 기소 상으로 채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대 배심과 소 배심>
일단 기소가 되면 법원은 공소사실의 유·무죄를 가리기 위한 소 배심(Petit Jury)을 다시 구성한다. 배심원의 자격요건과 최장 집무기간(18개월)은 대 배심과 똑 같으나 12명으로 구성되고 만장일치제를 택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소 배심은 기소된 죄목을 하나하나 따져 죄목마다 『유죄다』『무죄다』만 판단하는데 배심원간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18개월을 넘기면 재판부가 배심원을 해체하고 다시 새 배심원을 구성하는데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소 배심의 유·무죄에 대한 평결(Verdict)아 나면 판사는 그 죄에 대한 형량만을 정해 선고하며 배심원들에게 수시로 법률상식을 제공한다.

<피의자에의 면책>
미국의 검찰은 기소한 사건에 대해 공판 도중에 공소를 취소할 수 없으며 법원도 기소 사건에 대해 독자적으로 공소기각 결정을 할 수 없다.
다만 배심·판사·검사는 사건의 성격으로 봐 주범과 종 범이 있어 주범만 처벌하고 굳이 종 범을 처벌하지 않아도 교육형 주의의 목적을 거두거나 정치적 사건에서 개인의 처벌보다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사회병리학적 수술이 필요한 경우『수사에 협조한다』는 조건하에 특정 피의자에게「면책 권」을 부여할 수 있다. 면책 권을 받고 수사에 협조하면 처벌은 받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보장된다. 단 위증을 할 경우 다른 죄목으로 처벌을 받는다. 면책 권의 근거는 미 수정헌법 5조의「자기부죄금지 원칙」이다. 남의 죄까지 뒤집어써서는 안 된다는 것.
박동선 사건에서 미국 측이「수지·박·톰슨」(「칼·앨버트」전 하원의장비서)과 김형욱·김상근에게 면책 권을 부여하고 이들로부터 이른바 박씨의 뇌물공여 사실과 한국의 미 의회「로비」활동에 관해 증언을 들은 것은 그 예다.
때문에 미 법원이나 의회가 박동선「스캔들」을 조사하는 목적을 지난날 미 의회의 부패상을 파헤치고 정치풍토를 바로 잡는데 둔다면 박씨에게 면책 권을 주고 미국에 와서 수사에 협조하게 하는 방법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법원이 박씨에게 면책 권을 주면서까지 박씨의 신병을 확보하려 할지는 극히 의문이며 박씨가 미국에 가지 않는 한 공판진행은 불가능하다. 피고인이 없고 피고인의 재판을 받을 권리와 방어 권이 구성되지 않으면 재판은 성립되지 않는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미 연방 대 배심이 박씨가 부재인 상태에서 기소한 것은 그 자체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전 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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