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를 초월한 황홀한 연주|백건우씨 초청 피아노 독주회를 보고|박정윤<피아니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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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76년 여름 15년만에 귀국하여 연주회를 가진 이래 우리나라 음악계에서 인기와 화재의 주인공이 된 백건우.
그는「피아노」를 통하여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나타내며, 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섬세함 윤리와 의지를 유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미 기교를 초월한「피아노」주법상의 합리적인「메커니즘」을 완전히 몸에 익히고 있으며, 당당한「비루부오」조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이번 연주회를 통해 입증하였다.
이번 독주회에서「쇼팽」과「리스트」만으로「프로그램」을 구성한 것도 특색이 있으며 전반적으로 보아 청중과의 타협보다는 음악에 대한 그의 야심적인 진지한 면을 발견할 수 있는 내용 있는 구성이었다. 이 두 작곡가는 낭만파인 같은 시대에 함께 생존했지만 작품의 구성이 서로 다르며 음색에 대한「피아니즘」의 요구에도 차이가 있다.
먼저 처음 연주한「쇼팽」의 24전주곡 집(작품28)은 각 곡이 지닌 음악적 표정을 신선한 감각으로 예리하면서도 무한한 여유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전개시켰다.
특히 3번·10번·16번에서 보여준 무리 없는 기교에 강한 매력을 느꼈으며 4번·6번·13번에서는 그의 풍부한 음악성으로 청중의 혼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18번·22번·24번에서는 「에너지」로 표현할 수 있는 그의 강한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날 사용한「스타인웨이」(Steinway)「피아노」가 새로 구입하여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피아노」였으므로「해머」가 아직 굳지가 않아 일반적으로 그가 원하는「포르데」의 표현이 미흡하였다는 것이다. 유감으로 생각한다.
2부의「리스트」일색의「프로그램」은 그의 의욕적인 작품에 대한 애정과 애착을 표현하였으며 충분히 청중으로부터 공감을 받았다고 본다.
먼저 중후한 감정의 종교적 내용을 가진『울며, 애도하며…』의 변주곡에서는 끊임없이 반복되는「모티브」의 처리가 인상적이었고, 철학적 사색에 찬 감동적인 연주였다. 앞서 보여준「쇼팽」과 판이한「리스트」의 해석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 연주한 짤막한 6개의 소품은「리스트」말년의 작품들로 화려한 기교적 작품에 비해 내면성을 추구한 곡들이다. 여운 있는 감미로운「톤」의 구사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를 표출해 내어 자신이 발견한「리스트」의 진수를 충분히 토로하였다.
마지막 연주는「구노」의「파우스트·월츠」와 「베르디」의 「리골레토·파라프레즈」의 편곡작품으로 그의 기교가 만발한 화려한 연주였다. 감흥이 넘친 즐거운 연주로 이날의 백미였다.
약동하는「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그의 수완 있는 연주솜씨는 경이적인 명 연주로 청중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더욱 더 경진하여 세계 속에 한국을 심는 연주가로서 백건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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