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근로자들의 천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암소 갈비 한짝 2「달러」』.
목축의 왕국으로 1억5천3백만 마리의 양과 3천3백만 마리의 소를 키우는 호주라곤 하나 갈비 한 짝이 단돈1천원이라니 싸다.
『어째서 2「달러」 뿐이냐』 는 물음에 『잘라 주는 값』이라고 푸줏간 주인은 간단히 대답한다. 갈비값은 거저이고 인건비만 받겠다는 말이다.
아무튼 호주에서 가장 값 싼게 쇠고기지만 다른 물가는 우리나라 수준이다. 사람 손이 간 것은 특히 비싸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뺀 미국의 땅덩이 만한 면적(7백68만2천3백평방㎞)에 인구는 우리나라의 약3분의1인 1천3백50만 명뿐인 이 나라는 노동력 부족으로 고민하고 있다.
때문에 노년층 근로자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극장 매표소·식품점·식당 고용원은 물론 정부 기관·도서관 등에는 70세를 훨씬 넘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젊은이 못지 않게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멜번」시내 소극장 매표원인 「캄빌」노파(67)는 주1백57「달러」를 받는다. 호주 정부가 최근 발표한 근로자 평균임금은 주1백55「달러」90「센트」. 월급으로 환산하면 약30만원 꼴이다. 주40시간을 일하게 돼 있어 시간당 임금은 약4「달러」.
노동력이 부족한 만큼 이 나라의 노조는 정부보다도 강하다. 과도한 노동쟁의를 두고 「매스컴」들은 가끔 「노조 망국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호주의 근로자 수는 약6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이중 55%이상이 2백86개의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다.
1백70만 명의 육체 노동자로 구성된 호주 노조 평의회는 이중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으며 「화이트·칼러」 근로자 30만 명을 포용한 전문직 노조 회원10만 명의 공무원 노조도 만만찮은 존재다.
이들 노조 산하의 각종 산별 노조는 서로 긴밀한 유대를 갖고 상호 보완 지원한다.
식당 종업원이 부당하게 해고당한 경우 운수 노조에서 먼저 각종 물품의 배달을 거부한다. 식당 주인이 손수 자동차를 이용하면 다음엔 전기 노조에서 단전을, 자가 발전 시설을 갖춰 대항하면 다음엔 단수 작전으로… 이런 식으로 식당 주인의 영업을 완전 봉쇄하는 게 호주의 노조다.
『근로자 권익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걸핏하면 전기를 안주고 수도물을 끊으니 시민 생활의 불편 또한 많다』고 이곳 교포 이종협씨는 말한다.
어느 때 호주 국회의 모의원이 노동 쟁의권을 과도하게 인정하고 있는 헌법을 수정하자고 제의했다가 1년 동안이나 의사당 안의 자기 방을 손수 청소해야 하는 곤욕을 치렀다고 이씨는 전한다.
의사당에 고용된 청소부들이 이 의원의 사무실 청소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최근 공식 방문을 위해 정부 청사에 들렀던 정일권 국회의장을 환송차 「프레이저」 수상이 현관에 나타났는데도 현관 수위는 편안한 자세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수상이 나왔는데 어떻게 수위가 앉아 있을 수 있느냐』고 묻자 호주 정부의 안내원은 『그게 뭐가 이상하냐』며 오히려 이쪽이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수위는 수위로서의 임무가 있고 수상은 수상으로서 할 일이 있을 뿐이니 자신의 임무만 다하면 족하지 수위가 수상에게 경의를 표하라는 법은 따로 없다는 설명이다.
서구식 자유·평등주의와 노동력 부족에 따른 노조의 비대화가 낳은 산물인가 싶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다. 【멜번=주원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