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의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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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린아이가 몹시 아파 의사의 처방대로 약을 먹였다. 그러나 며칠이 가도 병은 낫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 의사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다.
의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나의 약이 병하고 싸우는 중이니까요.』
안심하고 돌아갔던 아버지가 조금 뒤에 의사를 다시 찾아왔다. 앓던 아이가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의사는 이때 태연히 말했다. 『내 약은 병과 싸워서 이겼는데, 아드님은 그 약과 싸우다가 지고 말았군요.』
「중국 소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약의 오용이나 과용을 풍자하고 있다.
「약」을 맹신하는 풍조는 필경 일본에서 옮겨온 것 같다. 「유럽」사람들만 해도 「약은 독」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아스피린」의 광고문을 보아도 『감기엔 「비타민C」가 듬뿍 든 과실이 제일 좋습니다. 혹시 필요하면 「아스피린」을 써 보십시오』하는 식이다. 이런 광고가 아니고는 사람들의 거부 반응을 사기 쉽다.
전후 일본에선 성장 「붐」속에서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피로회복」제나 「영양제」가 등장했다. 「드링크」제 「비타민」은 한때 일본의 「국민약」처럼 애용되던 시대도 있었다.
일본에는 현재 10만5천여종의 약이 제조 허가를 받고 있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를 보면 일본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현재 3천여종의 약만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38년부터 1962년 사이에 미국FDA(식품의약품국)가 제조를 허가한 약품도 불과 7천종뿐이다. 그것은 약의 감시 체제가 얼마나 엄격한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미국은 1962년이래 모든 의학 약품에는 최대한의 부작용과 사용상의 주의 사항을 의무적으로 밝히도록 했다. 약의 효능보다는 그 역 효능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FDA는 모 다른 한편으로는 의약품의 재평가를 계속해 불량 혹은 무 효능의 약품 「리스트」를 공표하고 있다.
재평가의 과정도 이중으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 먼저 「유해」 「다소 유해」 「유해 근거 없음」 등 3단계의 평가를 한다.
그 가운데 「유해」와 「다소 유해」의 약은 다시 부작용의 정도에 따라 「유용」 「다소 유용」 「유용 근거 없음」의 판정을 받아 비로소 환자에게 돌아간다.
최근 우리 보사 당국도 시판 약품을 진단하는 재평가를 실시하고 있는가 보다. 약품의「정글」속에 사는 우리 현실에서 그것은 꼭 필요한 일 같다. 「즉흥」아닌 「제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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