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누더기 교육법을 정비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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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나라 현행교육법은 군데군데를 얼룩천으로 이어 붙인 헌 누더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9년12월31일의 첫 제정공포이래 매년 평균 1.3회 이상(52∼61년 제외), 심한 경우(68년)엔 1년에 3번 이상의 잦은 개정으로 무려 23회에 걸친 크고 작은 땜질을 했으니 그 남루함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가 아니겠는가.
개정 때마다 그럴만한 이유야 있었을 것이다.
하나, 결과적으로는 즉흥적·미봉적 조령모개로 이 나라 교육법 체계는 이미 오래 전에 만신창이가 됐고 특히 최근 수년 내로는 법체계로서의 제일생마저 상실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 결과로 이 나라 교육법의 근본이념이라 할 교육의 자치나 자율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었던 단선형 학제의 골격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49년 공포이래 땜질 23회>
이리하여 오늘날 우리 교육제도는 「엘리트」양성과 조기 사회진출자를 준별하는 복선형도 아니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각종 교육의 기회를 개방한 단선형도 아니면서, 특히 평생교육 같은 진보적 교육이념을 제도화할 소지 같은 것은 스스로 봉쇄하는 따위, 기이한 형태를 갖게됐다.
그런데 29일 신문보도로는 ①산업체 재직근로자들의 대학입학자격에 관한 특례인정과 ②학사학위 수여과정의 방송통신대학설치, 그리고 ③전문대학제도의 창설 등을 골자로 하는 또 하나의 교육법개정안이 여당권의 심의에 회부되었다는 것이다.
여기 법개정의 취지 자체에 대해 누구보다도 큰 관심을 가진 필자로서는 감히 이런 땜질식 법개정 시도에 대해 이의를 재기함으로써 차제에 우리나라 교육법체계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재정비가 있어야하겠음을 제언하려는 것이다.
문제의 개정안 골자는 그동안 소개된 것 만으로써도 능히 그 시대적 타당성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입특혜, 평등원칙 배치>
이 개정안이 의도하고 있는 근로청소년과 전 성인인구에 대한 고급 직업기술훈련 및 고등교육기회 확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겠다는 문제의 필요성 내지 긴급성에 대해서는 새삼스레 긴 설명이 필요 없다. 그것은 중화학공업화를 지향하는 국가목표의 실현을 위해서는 물론, 오늘의 세계적 추세라 할 평생교육 제도의 토착화 또는 이른바 재수생문제 해결의 사회적 긴박성 등 어느모로 보거나 우리에게 절실하고 긴요한 국가적 과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타당성에 대한 공감이 깊을수록 큰 문제들이 내포하고 있는 심대한 의미함축들은 재삼 엄밀히 검토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그것이 과연 현행 교육법의 땜질정도로써 가능할 것인가를 문제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지나친 낙관…방송통신대>
우선 근로자들의 대학입시자격에 특례를 인정하는 것 자체는 좋다하더라도 그러한 법개정이 그렇지 않아도 원칙에 대한 예외투성이의 이 나라 대학교육제도에 어떤 부작용을 할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원래 대학자체의 고유기능으로서 최대한으로 존중되어야할 학생의 입학 및 진퇴학에 관한 사항에마저 층층 겹겹으로 원천적인 행정적 제약을 가하는 입법이 이 나라 교육제도의 근본이념에 배치된다함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만인의 법 앞에서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정신과는 또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도 법기술적으로 조정되어야할 것이다.
다음 학사학위를 주는 정기대학 과정으로서의 방송통신대학제도는 이 나라 교육사상 확실히 하나의「이포크」를 가져올 획기적 정책구상이지만, 이같은 복잡다기한 제도의 운영을 현행 교육법에 추가한 단 몇 줄의 조문만으로써 기대한다는 것은 사안의 중대성에대한 심한 인식부족이거나 아니면 지나친 낙관의 결과일 것이다. 이미 확고한 기틀을 잡은 몇몇 나라의「오픈·유니버시티」의 예에서 보는바와 같이 이 대학의 운영은 하나의 종합대학교의 창설 못지 않게 거창한 규모의 시설·인원·기재·재정 등을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독립된 특별법의 제정으로써도 오히려 부족할것이다.

<학교외 교육기관도 정비>
거기다 이 나라에는 아직 이같은 독특한 형태의 교육기관을 포섭할만한 개념으로서의 광의의 「학교외 교육」 내지 「평생교육」이란 용어 자체에 대한 법적 정의마저 정립된 바가 없는 처지인 것이다.
이 모든 점에서 필자는 이 나라 교육법체계를 우선 『교육 기본법』아래 『학교 교육법』과 『사회(평생) 교육법』 등 세 기둥으로 정비, 그동안 지리멸렬하게된 이 나라 교육제도의 온갖 변태및 법체계 이탈현상을 바로잡는 것이 긴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미 교육법 테두리 밖에서 학위까지 주고 있는 3군사관학교·과학원 등을 비롯하여 그밖에도 장차 속출하게 될 동종의 학교외 교육기관의 교육활동까지도 이를 현대교육의 한 유형으로서 능히 포섭할 수 있는 넓은 법적 「흘리전트」를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정부당국자에 의해 또 하나의 교육법개정안이 제출된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필자는 이미 헌 누더기가 돼버린 현행교육법을 대신할, 새로운 법체계의 정립·정비를 촉구하려는 것이다. <필자=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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