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공부의 예산지원 중단으로 설 땅 잃은 「서울 음악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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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인작곡가를 위한 유일한 등룡문이며 기성작곡가들의 화려한 발표 무대가 되었던 「서울음악제」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음악협회(이사장 조상현)가 부진한 창작곡의 진흥을 위해 지난 69년부터 마련, 8년간 계속해온 「서울음악제」는 올해부터 문공부의 예산지원(약 8백만원)이 중단됨으로써 더 지탱해 나가기가 어렵게됐다.
「서울음악제」에 대한 문공부의 예산지원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한국음협측에 전해진 것은 지난 2월말. 그에 따라 음협측은 지난3월22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음악의 궁극적인 발전을 위한「서울음악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공문을 문공부측에 보냈다.
두 차례의 음협 공문에 대한 문공부의 회신이 음협측에 전해진 것은 지난 8월10일. 「서울음악제」예산지원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했으나 예산사정상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지난해 가을 이미 올해의 제9회 「서울음악제」를 위해 작품위촉을 하고 지난5월 공모심사를 끝낸 후 오는11월9일부터 11일까지로 날짜를 잡아 발표될 예정이던 작품들은 이제 무대를 잃게 되었다.
지난 69년부터 시작된「서울음악제」 는 우리나라에선 처음으로 기성작곡가에게는 새 작품을 위촉하고 신인 작곡가로부터는 작품을 공모, 그 작품들을 연주가들에 의해 무대에 올리는 형식으로 진행해 왔다. 지난 8년 동안 가곡 52곡·합창곡 43곡·실내악 67곡·관현악곡 39곡· 「오페라」1곡 등 총2백2곡의 새 작품이 「서울음악제」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러한 서울음악제의 성과는 작곡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선 획기적인 일로 최근 어느 정도 활기를 띄고 있는 작곡풍토의 기틀을 마련해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울음악제」를 통해 작곡계에 첫선을 보인 작곡가중 현재 활발한 활약을 보이고있는 작곡가는 오숙자 (경희대) · 주영자(이화여대)· 김청묵 (연세대)·이연국(경희대)씨 등.
그밖에 이성재·정회갑· 김성태· 김달성· 박중후· 나련영· 장일남· 이영자· 강석희· 최인찬· 백병동씨 등 기성작곡가들이「서울음악제」의 무대를 통해 그들의 야심적인 신작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서울음악제」는 누구보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음악인 자신들은 물론이고 일반의 무관심으로 인한 관객동원의 부진, 일부 연주자및 주최측의 형식적인 대회운영, 제한된 예산, 일부작품의 질 저하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가지 문제는 어디까지나 음악제를 계속해가면서 시정돼야할 것이지, 음악제를 중지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음악계의 중론이다.
문공부는 올해부터 새로이 한국작곡계의 발전을 위해 「대한민국 작곡상」을 제정했다. 또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국내의 음악가들이 참가하는 거창한 음악회를 열도록 후원하고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도움이 필요하고, 또 진정한 음악계의 발전의 밑거름이 될 신인작곡가들의 유일한 작품발표 무대를 없애는 것은 전후 모순된 정책이라고 음악인들은 말한다.
김순애 교수(이대·작곡)는 『그렇지 않아도 발표무대가 없는 우리나라 작곡가들로부터 「서울음악제」를 통한 발표무대를 빼앗는 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라고 단언한다.
지금 당장은 큰 성과가 없더라도 우리나라 음악계의 장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행사라는 것이다. 『한국창작음악의 참된 발전을 위해서는 극소수의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작곡상 보다는 좀더 많은 신인작곡가들에게 작품발표의 기회를 주는 「서울음악제」의 존속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것은 백병동교수(서울대· 작곡)의 얘기. 「서울음악제」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했고 71년부터는 음협 이사장으로 음악제를 주관해온 조상현씨는 『정부의 지원이 없더라도 음악계의 창작진흥과 발전을 위해 음악제를 계속할 결심』임을 밝혔다.
이를 위해 음협측은 몇가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정부측의 지원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는 것. 다음 단계로는 문공부측에 연주장소의 무료대관을 요청하고 음악인들이 무보수로 출연하는 방법. 제3안은 독지가나 민간단체의 도움을 폭넓게 구해 음악제를 지속시키는 방법 등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 없이는 고작 1, 2년 끌고 나가기도 어렵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견해다.
그래서 음악계는「서울음악제」 존속을 위한 대대적인「캠페인」을 벌일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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