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테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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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백제와 신라를 「아테네」와 「스파르타」로 비유하는 학자도 있다. 백제의 문화는 「세련」과 「우아」가 두드러져 흡사 「아테테」의 문화를 연상하게 된다.
신라는 이와는 대조적이다. 「근엄」과 「장중」을 드러내 보인다. 「스파르타」와 같은『무의 문화』가 어딘지 두드러져 있다.
기와장의 연꽃무늬 하나를 보아도 고구려나 신라의 것은 어기차고 힘이 있다. 그러나 백제의 연꽃은 그보다는 온화하고 섬세하여 「스마트」한 모습을 하고 있다. 「무의 문화」아닌 「문의 문화」다운 매무새를 숨길 수 없다.
백제는 고구려·신라와 함께 3국의 하나로 6백78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백제가 나라의 체계를 세워 그 독특한 문화를 이룩한 것은 불과 3백여년 동안의 일이었다.
백제는 정치적으로 늘 전진·고구려·신라 등 3국 연맹에 대항하는 처지에 있었다. 중국남조의 동진 그리고 일본과 가까이 지낸 것은 그런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신라와 자주 싸우는 일본은 백제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의 이른바 「아스까」(비조)문화는 바로 백제의 문화가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이 일본인 사학자들의 생각이다.
백제인의 예술적인 감각은 적수인 신라인들도 높이 평가했던 것 같다. 신라 황룡사9층탑을 쌓을 때는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를 초빙했었다고 한다.
백제문화가 「스마트」한 양식을 보여주는 것은 일설에는 중국남조의 영향이라고도 한다.
백제문화는 특히 그 도읍지였던 부여와 공주, 그리고 익산지역을 중심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1백32년에 걸친 도읍이었던 부여지방의 능산리 고분에는 정밀하게 쌓은 석실고분 사면석벽과 천장의 사신도, 연화문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63년 동안 왕도였던 공주에도 전성기의 임금인 무령왕의 능이 있다. 백제문화의 정수는 71년에 발굴된 바로 이 무령왕릉의 유품 등에서 눈부신 모습을 보여주었다. 익산에도 미륵사 석탑 등이 남아있어 백제문화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백제문화권의 유적들은 지금까지 너무도 미미했었다. 한때는 공주박물관이 무색할 형편이었다.
그나마 무령왕릉의 유품이 햇빛을 보면서 그 찬란한 문화유산의 맥락이나마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정부는 내년부터 이 백제문화권을 종합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한때는 윤곽조차 알 수 없던 한국의 「아테네」를 비로소 되찾게 되는 것 같다.
「문의 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개발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고증과 보존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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