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M 24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미국의 CIA는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일을 제외하고는 못하는 일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백악관의 지하실엔 그 CIA보다도 더 위력을 갖는 기구가 있다. NSC라는 약자로 통하는「국가안보회의」(내셔널·시큐리티·카운슬)-.
「키신저」시대엔 그 밑에 7개의 분과반을 두고 세계의 모든 일을 요리했었다.「키신저」를 「닉신저」(「닉슨」대통령의 이름을 따서)로 만든 것도 바로 이 NSC의 위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터」가 집권하면서 『공개정치』의 구호와 함께 먼저 손을 댄 곳이 NSC이다.
지금은 이 NSC가 2개의 분과위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그 하나는 「대통령정책검토위원회」(Presidential Review Committee)이며 다른 하나는 「대통령정책조정위원회」(Presidential Policy Coordination Committee).
전자의 「대통령정책검토위원회」에 참석하는 단골「멤버」는 국무·국방·재무·합참의장·CIA국장·대통령안보담당보좌관. 바로 이들이 토론·결정한 내용은 그 위원회의 두 문자에 건의서(「메모랜덤」)라는 명칭을 덧붙인 「PRM」이라는 약자로 표기돼 대통령에게 제출된다.
바로 주한미군의 철수계획을 비롯한 한국문제를 건의한 NSC의 문서도 10「페이지」짜리의 「PRM13호」였다.
PRM은 얼핏 생각하기엔 비중을 가볍게 볼 수도 있다. 우선 법적인 구속력이 없으며,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정책선택을 위한 하나의 「견본」제시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번 「밴스」국무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는 2개의 PRM을 휴대했었다는 후문도 있다. NSC의 정책검토위원회는 미·소 군축문제를 놓고 아무리 토론을 거듭해도 갑론과 을론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2개의 결론을 담은 PRM을 대통령에게 제출했다.「카터」대통령은 그 각각의 의견을 존중해 갑·을론을 모두 「밴스」의 가방에 넣어 주었다.
그러나 문제의 성격에 따라서는 PRM이 바로 「대통령의 정책」(PD=프레지덴셜·디시전)으로 채택되기도 한다. 주한미군의 철수문제를 건의한 PRM-13호가 그 경우다.
최근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에번즈」와 「노바크」가 밝힌 태평양의 미군사력 배치기준선에 관한 문제도 PRM 24호에 담겨있다고 한다. 태평양에 「알래스카」-일본·「오끼나와」-「괌」도로 연결되는 새 군사기준선을 설정하는 문제를 검토한 내용이다.
한국은 물론, 대만-「필리핀」 등이 모두 선외로 제외되어 있다.
한국동란을 불러 들였던 1950년도의 「애치슨」방위선을 상기하면 PRM 24호는 「아시아」인에겐 「악몽의 문서」가 될지도 모르겠다. 「밴스」의 중공방문을 앞둔 하나의 「애드벌룬」이라는 견해도 있는가 보다. 정치각본치고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카터」의 모험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