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 장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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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파리」의 새벽 산책길은 별로 즐겁지 않다. 신선한 것이라고는 무성한 수목들밖엔 없다.
가로도, 공원도 휴지 투성이다. 비질을 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상가들은 10시가 지나야 비로소 하나 둘 문을 열기 시작한다. 청소는 하는 둥 마는 둥. 「시라트」시장이 그처럼 열을 올리는데도 「파리」는 좀 체로 깨끗해지질 않는다. 「런던」 「브뤼셀」 「암스데르담」 「코펜하겐」도 예외는 아니다.
「로마」는 아침 6시면 쓰레기차가 게처럼 기어다닌다. 집집마다 문밖에 내놓은 검은 「비닐」자루를 이 차는 집어삼킨다. 쓰레기차 뒤엔 흡사 방앗간의 「모터」같은 시설이 있어서 쓰레기꾸러미를 그 자리에서 으깬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지저분한 거리는 면치 못한다.
이런 풍경은 동경에서도 볼 수 있다. 다만 「비닐」꾸러미의 빛깔이 다를 뿐이다.
언젠가 일본TV에서 흥미 있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난다. 북해도의 어느 마을에서·노인들이 목욕을 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목욕탕은 시설이 조금도 옹색하지 않았다.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물은 수정 같았다. 60세 이상의 노인들만을 위한 이 목욕탕은 완전무료.
까닭이 있었다. 어느 사회봉사단체에서 「아이디어」를 내 놓았다. 쓰레기를 이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인 것이다. 쓰레기 중에서 불에 타는 것만을 따로 모아 이목욕탕의 물을 덥히기로 한 것이라. 집집마다 쓰레기를 아예 두 가지로「불에 타는 쓰레기」와 그렇지 않은 쓰레기로 나누어 놓는다. 불에 타는 쓰레기는 그 사회봉사단체에서 모아 이 목욕탕에 쌓아 놓는다.
만일 「유럽」의 도시들이 연탄을 사용한다면 필경 연탄재에 묻혀버릴 것 같다. 서울은 이런 경우를 생각하면 그래도 깨끗한 편이다.
쓰레기의 79%가 연탄재라는 통계를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요즘 서울시의 토목 실험소는 쓰레기를 재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는가 보다. 연탄재는 건자재로, 가연 물질은 발전연료로-. 「로맨틱」한 착상 같지만, 한번 시도해 봄직하다.
어디 발전연료뿐이겠는가. 주택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선 「센트럴·히팅」장치를 해서「보일러」의 연료를 대는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쓰레기의 질이 그런 「로맨틱」한 「아이디어」를 뒷받침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의 대중생활 형편은 아직 건성의 문명쓰레기를 버릴 정도는 이르지 못했다. 시민의 공덕심도 좀 더 높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연탄재 재사용의 「아이디어」는 당장 빛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쓰레기 속에 장미꽃을 피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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