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발음 좀더 과감히 인정했어야"-국어연구위의 표준말개정안을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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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는 국어조사연구위원회의 맞춤법·표준말개정 두 작업에 참여하고 나서 현행 맞춤법이나 표준말의 문제점이 얼마간 해결될 것으로 보아 다행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표준말 새 사정은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말로 한다』는 새 표준말기본원칙에 70∼80%는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마는 맞춤법은 띄어쓰기 조항을 제외하고는 지엽적인 개정이 약간 가해졌을 뿐 거의가 현행 그대로여서 불만인 것이다.
이 표준말 사정에 있어서 ⓛ과거 고려되지 않았던 된소리나 긴소리, 겹받침 붙는 말의 발음을 사정한 것은 잘한 일이요, 대체로 제대로 사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발음교육의 근거가 마련된 점은 혁신적이다. 「사건·헌법·진가」로 적고, 현실 발음대로 「사껀·헌뻡·진까」로 읽자는 것이다.
②「곰팡이·잠방이·멋장이」들을 「곰팽이· 잠뱅이·멋쟁이」등으로 한 것도 잘한 일이다.
그러나 33년 철자법통일안을 제정했던 당시의 선배가 보인 과감성을 배워 좀더 현실발음을 존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현행 맞춤법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 아닌가 하는데 본질적으로 우리글자는 표음문자요, 초중성 혹은 초중종성 글자가 결합하여 실용되는 음절문자인 것이다. 이 특성을 살리되 다만 해방 후 30여년을 현행맞춤법에 의한 교육이 행해진 사실을 감안하면 표의문자의 장점도 얼마간 살리는 절충적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현행 28개의 받침이나 지나치게 형태소(어원)를 밝히는 것은 한자의 흉내요, 단어중심의 띄어쓰기를 영어의 흉내라 하겠는데 이 남의 흉내를 지양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33년 현행 맞춤법제정 당시엔 「훈민정음」 제정원리를 해설한 「훈민정음 해례」가 없었다. 이 해례 본이 발견된 1940년은 이미 우리 글이나 말을 연구할 수 있는 정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세종대왕의 『어린(우)백성이 쉽게 익혀 쓰기에 편하도록』하겠다는 한글 창제정신과 정린지 서문의 『슬기로운 자는 하루아침에 깨치고 어리석은 자라도 10일 이내에 깨친다』라고 한 한글의 본질에 맞도록 맞춤법이 개정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국민학교 6년간의 의무교육을 마친 이들로 하여금 틀림없는 표기생활을 할 수 있게 해야할 것인데 현행 맞춤법의 습득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중평인 것이다.
또 하나 맞춤법개정과 관련 있는 외래어표기법에 문제가 많이 있은 즉, 원음 아닌 관용음 존중, 중국 일본 등 동양인명 지명 등은 한자가 적고 우리한자음으로 읽어 국내인 끼리 의사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함을 원칙으로 개경이 서둘러지기를 희망한다.
이상 표준말과 맞춤법의 두개정안은 국어심의위원회의 자문을 거치기로 되어있다 한다. 당연한 순서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제언한다.
ⓛ맞춤법이나 표준말작업은 한글전용이냐 국한혼용이냐하는 문제와 유기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들이므로 종합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바 일부 논자에 오도되어 득보다 실이 많은 현 한글전용정책을 즉시 지양해야한다.
②「한글전용」방향으로 치닫던 70년 전후의 상황에서 벗어나 국어·국자가 온 국민의 어문생활에 직결되는 것이므로, 학계·교육계·언론계·문단, 그 밖의 지식인의 여론이 충분히 반영되기를 희망한다.
③안 확정 후, 안의 해설보급을 위한 강연·강습회를 열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보완하는 시간적 여유를 가진 다음 시행하되 교과서 개편까지만 확정되도록 서둘러지기를 희망한다. 【남광우(국어학자 인하대사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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