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노선의 승리-등소평 두번째 복권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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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등소평의 두 번째 복권이 재실 각 15개월만에 표면화된 것은 중공의 화국봉 체제가 이제 단결과 안정을 회복했으며 고 주은래 전수상의 온건한 실용주의노선을 계승하기로 당내의견이 어느 정도 모아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등은 『고양이가 희든 검든 간에 쥐만 잡으면 된다』는 그의 유명한 어록에서 보여주듯 혁명정신보다는 합리주의에 실용주의노선을 주창해온 인물이다.
화국봉 당 주석이 「주자파」 또는 「배반자」라는 낙인이 찍혀 실각 당한 등을 허다한 난관을 무릅쓰고 다시 복권시키지 않을 수 없는데는 등의 그런 합리주의적 성향이 현재 중공에서 절실하게 요구되고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게다가 「홍콩」제 만능약품인 「완진유」(만금유·등의 애칭)와 같이 만능적인 등의 자질과 풍부한 경륜이 2천년 대에 미소에 버금가는 초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공의 장기목표에 현실적으로 크게 필요한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이 시기에 등의 복권이 실현된 것은 당·군·정부 등의 분야에 광범한 지지세력을 갖고있는 등이 현 중공지도체제의 안정과 단결에 절대적인 요인이 되고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등의 복권은 지난 10월 모택동의 처 강청 등 문혁파 「4인조」가 체포되고부터 널리 예상되어왔다. 4인조를 축출하고 화 체제의 근간을 이뤄온 세력이 등을 지지하는 군부와 온건실무관료들로 이뤄져 화 주석은 이들로부터 등을 복권시키라는 압력을 받아왔다.
또 화로서는 지지기반이 엷고 경륜도 특별히 뛰어난 데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등의 도움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인민들에게 인기가 있는 주·등의 정책노선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등의 조기복권은 장애요인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76년의 등의 실각이 모의 지지와 당 중앙위의 결의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에 4인조의 실권 직후에 그를 복권시킬 경우 모와 당 중앙위의 권위는 다같이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고 인민들에게도 큰 혼란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권장악에 협력한 일부 문혁파 세력이 그의 복권에 반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등의 복권실현은 따라서 화 체체가 이런 모든 문제를 극복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름난 반소강경론자였던 등이 지난 수년간 실질적으로 대미관계개선을 주도해왔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등의 재 복권은 중공지도층이 미국을 포함한 대서방외교에 보다 유연하게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한편 소련에 대해서는 계속 적대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같다.
등소평 약력
▲1903년 사천출생 ▲20년대 불·소 유학 ▲21년 입당 ▲30년대 및 40년대 제2야전군정치위원 ▲52년 부수상 ▲56년 당총서기 ▲67년 실각 ▲73년 부수상으로 복권 ▲75년 부수상·당부주석·군총참모장 ▲76년 재실각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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