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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간의 사법공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은행의 특정 예금기록에 대한 서울형사지법의 압수수색영장이 미국의 한 법원에 의해 미국내 집행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간에 사법공조협정이나 범죄인인도협정이 없음에 비추어 상례이기보다는 이례에 속하는 일이다.
이번 경우는 미국은행의 저금통장이라는 분명한 근거가 제시된데다 한미외교당국의 협조로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케이스」는 귀중한 선례이기는 하나 앞으로 비슷한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겠는지는 미지수다. 앞으로 한미간에 확고한 사법공조의 선례로 확립되려면 그 비슷한 예가 더 쌓여야만할 것이다.
국제 사법공조(Inernationales Rechtshilfe)라고 하면 거기에는 범죄인인도와 소송공조가 포괄된다. 범죄인 인도는 외국에서 죄를 범하고 도망해온 사람을 그 외국의 청구에 그 외국의 청구에 응해 인도하는 것이다. 그 외에 보통 그 나라에 주둔중인 외국군인이나 항공기·함정 등의 승무원을 체포·유치하는 등 사법사무에 관한 제반협조제공을 소송공조라고 부른다. 현행 국제법상의 일반적 규칙으로써는 국가에 사법공조 의무가 당연히 과해져 있지는 않다 다만 마약의 취체·단속에 있어서만은 예외적으로 광범한 협조의무를 지게되어 있다. 또 최근에는 항공기 납치범 처벌에 관해 비슷한 국제협조의 필요가 제기되고는 있으나 아직은 별 진전이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국제적으로 사법공조는 일반화되고 있지 않으나, 실제로 많은 국가가 개별적으로 범죄인 인도협정 또는 사법공조협정을 맺고 있다. 물론 협정체결이 없는 경우에도 사의·관례 또는 국제 관례상 사법공조를 하는 수가 있지만 이는 법적 의무에 따른 것은 아니다 이번 미국의 사법공조가 바로 그러한 예다. 국제적 교류가 빈번한 현대사회에서는 국제적으로 사법공조의 필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해외에 외화를 도피하거나 범법자가 해외로 도주하는 경우가 점점 흔해지고 있다고 지금까지는 외국으로 달아났다고만 하면 아예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쯤으로 치부되어온게 사실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우방에 대한 특별고려를 인정한 미국대법원 예를 원용해 미국의 사법공조를 받아낸 이번의 진취적 착상은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 앞으로도 그러한 노력은 물론 계속되어야 하겠다.
그러나 그보다도 근본적인 해결방법의 강구가 더 긴요하다.
우리국민이 많이 살거나 교류가 빈번한 나라와 점진적으로나마 사법공조협정이 체결되어야겠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일본과 만이라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과는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이른바 행정협정에 부분적인 사법공조가 규정되어 있으나 이는 여기서 말하는 일반적인 사법 공조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국과의 사법공조가 제도화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의 행정법제도가 국제적으로 신임을 받아야만 한다. 상호적으로 외국에 대해 사법공조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구내법의 정비가 선행될 것이 요구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국내법은 한미행협에 관한 민사 및 형사특별법 이외에는 전혀 갖춰진 것이 없다. 일본이 1887년에 「도망범죄인인도조례」를, 1905년에 「외국재판의 청탁에 따른 공조법」을 재정한 것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이번 모처럼 이뤄진 한미간의 사법공조를 외국과 사법공조의 폭을 넓히고 제도화하는 전기로 삼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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