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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다이어먼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부자도 부자 나름이다. 적어도 중동에선 불과(?) 몇억원짜리 저택에 「벤츠」자동차쯤 굴린다고 해서 모두가 부자일수는 없다.
10여억원 이상의 초호화주택에 살면서 몇 그릇 가득히 「다이어먼드」를 가지고 있어야만 부자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테헤란」은 말할 것도 없고 「리야드」「쿠웨이트」「아부다비」등 대도시의 번화가를 찾을 때 우선 보석상이 눈길을 끄는 것도 그만큼 수요가 높기 때문-.
상류 사회의 여자들은 「다이어먼드」궤짝을 꺼내놓고 그 빛깔을 감상하는 것으로 저녁 한때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다이어먼드」의 빛깔도 그늘진 구석도 없지 않다.
2백만 「달러」(한화 약10억원)짜리 저택에 살고있는, 이른바 중동부자들이 허다한 반면 아직도 천막생활에서 방조차 해결치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몇십 마리의 양떼에 생명을 걸고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에서 일생을 헤매는 고용살이 목동과 한 끼니의 빵을 찾아 공사판으로 찾아 헤매는 날품팔이가 산유국이라 해서 없을 수는 없다. 연간 1천억「달러」씩 쏟아지는 「오일·달러」속에서의 빈곤이라면 「오일· 쇼크」도 하나의 신기루에 불과할 뿐이다.
산유국으로서 가난한자에게 집과 빵을 주며 환자에겐 의료혜택을, 그리고 배우려는 젊은이에게는 온갖 교육의 기회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오일·달러」의 분산정책에도 한계가 있다. 「오일·달러」만으로 해결하기엔 너무나 역사가 길고, 전통이 깊기 때문이랄까. 정부의 시책이 국민개개인에 미치려면 아직도 요원하다는 게 오늘의 고민이다.
「이란」에서만 10년간 살아왔다는 어느 미국인 평화봉산단원의 주장처럼 그들이 남긴 약탈의 역사가 「다이어먼드」의 「갭」을 그토록 깊게 파놓았는지도 모른다.
더우기 유명한 그들의 자존심 앞엔 정부의 선심이 별효과가 없다. 「가진 자」와 「안가진 자」의 거리조정은 엄청난 「오일·달러」의 위력으로도 치료불가능이란 말이 된다. <이근량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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