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맹물도 사겠다"는 아랍 오일 달러의 위력-식수 달려 영「캐더린」호 매입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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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버킹검 궁전이 아랍 사람 손에 넘어갔다」고 하면 물론 농이다. 그래 이런 소리를 하곤 영국사람들은 곧잘 낄낄거린다.
『아무렇기로서니 그럴리야』해서 우선은 웃기부터 하는 거지만, 그게 마냥 즐거워서 웃는 웃음은 아니다.
이러다간 정말 언젠가 그런 얘기가 나올 법도 하겠구나 싶어도 지기 때문이다.
실상 요즘 런던에서 「넘어갔다」는 게 뻔질나게 화제에 오르내리고 또 『넘어갔다』 는 소리가 나오면 그건 영국사람이 가졌던 큼직한 자산이 「아랍」 사람 손에 넘어갔다는 게 십중팔구다.
그 으리으리한 「토체스터·호텔」이 우리 돈 1백억원 정도로 「아랍」부호 손에 넘어간 건 벌써 한 해가 넘은 옛날 얘기다.
그 후 비슷한 「파크·타워·호텔」도 넘어갔고 「첼시·호텔」도 넘어갔다. 그밖에 역시 아랍 사람 손에 넘어간 기십억 원 씩 하는 호화주택 따위들은 헤아리려면 열 손가락 가지곤 모자란다.
그러나 그쯤은 아직 약과다. 이번엔 아랍 사람들이 아예 큼지막한 호수를 통째로 사겠다고 나섰다. 듣자하니 그 호수물맛이 희한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호수 하나쯤 팔아보았자 영국에 손해 날 것 없지 않느냐라는 배짱에서다.
문제의 호수는 영국북부 스코틀랜드에 있는 「캐더린」은 예부터 물맛 좋기로 이름났고 「커티삭」「조니·워커」등 이 고장 명산 「스카치· 위스키」 양조장들도 그 기슭에 자리잡아온 유서 깊은 호수다.
이런 교섭을 받은 지방정부당국이 우선은 어안이 벙벙했던 건 뻔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물이란 아닌게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저걸로 괸다. 팔면 정말 봉이 김선달처럼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거저 버는 돈이다.
그래 지방정부는 현지 수리조합을 시켜 『물만 사가라』고 역 제의를 했다.
이에 아랍 측도 그러자고 OK. 그래서 어물장사· 흥정은. 바야흐로 무르익어 가고 있다는 게 현지로부터의 보도다.
한 보름 전부터 진행되온 흥정의 내용인즉 계약이 되는대로 우선 매달 1억 「갤런」 씩 (맥주병으로 7억 병분)의「캐더린」 호수 물을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지에 퍼 나른다는 거란다.
한달치 물값은 약4천만원. 맹물 값으론 적지 않은 돈이다.
아랍 산유국들의 외화보유고는 1천5백억「달러」라는 게 최근의 통계다. 그쯤 되면 돈이 돈이 아니다.
아랍인들은 정말 안 팔아서 그렇지 버킹검 궁전인들 못 살까보냐다.
영국사람들이 맹물로 돈을 벌어선 좋지만 기분은 과히 유쾌하지 못해도 그건 무리가 아니다. 【런던 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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