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의 공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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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벽암록에 「자시불각취」라는 말이 있다. 자기 뒤가 구린 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도 우쭐해 자는 경우가 많다. 자기에게 좋도록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매우 몰인정하고 인색한 사람도 본시 자기는 인정이 많고 남에게 잘해주고 있다고 여기기 쉽다. 정말로 자시불각취인 것이다.
이런 마음에서는 참다운 자선은 생기지 않는다. 그저 여유 있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에게 적선한다는 우쭐한 생각밖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때의 적선은 반드시 보답을 기대하는 게 보통이다.
양의 무제는 사원도 크게 세우고 불공도 열심히 드려「불심천자」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달마에게 자기는 무슨 공덕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달마는 『무공덕』이라고 잘라 대답했다. 공덕을 바라고 하는 일이라면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다.
공덕을 바라고하는 선행이라면 참다운 선행이랄 수도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야 참다운「선행」이 된다.
그 동안 본사가 주창하여 전국적으로 펼쳐졌던 불우청소년돕기 운동이 당초의 목표를 훨씬 초과하여 성금도 12억원을 웃돌았다.
대단히 흐뭇한 일이다. 앞으로 적어도 2만명 이상의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걱정만이라도 덜게되었다. 끼니걱정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렇게 도움을 받는 불우어린이들 중에서, 혹은 얼마나 훌륭한 내일의 인재들이 나올지 생각만 해도 흐뭇해진다.
「안데르센」도 불♀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가 세계적인 동화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교육시켜주고 먹여준 이름없는 독지자들 덕분이었다.
그들은「안데르센」이 꼭 훌륭해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못했다. 공덕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이번 불우고아돕기운동도 대부분이 이름없는 독지자들의 열의가 밑받침이 되었다. 신문에 사진이 나오고 이름이 나오기를 바라고 베풀어진 자선은 별로 없었다.
선행을 쌓아나가면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런 선인선과의 법칙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보다 명백한 것은 「인과일여」, 인이 그대로 과가 된다는 것이다. 선행을 안 할 수도 있는데 선행을 한다는 것 그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선행을 할 수 있는데도 악밖에 저지르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죄를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그저 무심히 착한 일을 쌓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불우유아돕기 운동이 끝났다고 온정을 멈출 수 있는 일도 결코 아니다.
▲고침=작일자 본란 1단22행 『서「파키스탄」』은 『동「파키스탄」』으로, 동24행 『동「파키스탄」』은 「파키스탄」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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