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별 학교 소산 계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학교를 동사무소 옮기 듯 하려는 서울시의 행정구역별 학교 소산 계획은 과연 온당한 것인가.
전통과 유서 깊은 서울시내 학교를 판잣집 철거하듯 이전시키려는 계획을 두고서 따지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학부모 등 관계자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도대체 무슨 법적 근거로 관계자들의 의사에 반해 학교 이전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학교설립자가 정부가 아닌 사인일 경우, 사립학교까지 강제로 옮기도록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다 같이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는 자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풍조가 팽배하지만, 당국이 수도권 인구계획 또는 기타의 목적을 이유로 학교설립자의 뜻과 달리 학교의 위치까지 행정력으로 규제하려는 발상이 과연 건전한 것인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문제가 되고 있는 수도권 학교 소산계획은 서울의 강북에 몰려 있는 각급 학교를 개발지구인 강남에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울의 계획인구를 7백만 명으로 잡고 인구의 걱정분산이 이루어 졌을 때, 필요한 학교 수를 산정하고 이 숫자에 맞춰 도심지의 각급 학교를 변두리 외곽지대로 분산, 구청별로 학교를 알맞게 재배치하겠다는 것인 듯하다.
그러나 학교, 특히 사학의 경우 설립자의 육영·건학 정신에 따라 알맞은 규모와 위치를 설정해 교사를 세운 것이기 때문에 동사무소를 옮기고 판잣집을 철거하듯 당국자의 마음대로 그 위치를 바꿀 수는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실 서울시내 기존학교의 대부분이 강북에 몰려 있어 학교 과밀현장을 빚고 있기 때문에 이들 학교를 신시가지인 영동·잠실 등 한수 이남으로 옮기려는 계획 자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관계당국이 일방적으로 계획인구를 정해 놓고 학교를 옮길 자리까지 지정하겠다는 처사는 마치 침대크기에 맞추어 몸을 조정토록 강요하는 것처럼 무리한 짓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따라서 당국은 학교관계자들이 강남 등 개발지구에 학교를 옮길 의욕이 치솟도록 좋은 학교부지를 알선하고 이전에 따른 제반비용 등을 융자하는 등 행정적인 뒷바라지로 학교 소산을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처사라 하겠다.
신 개발지역인 강남에 학교를 옮기도록 종용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선 학교부지로 지정해 놓은 땅을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아파트」건축부지로 환지 해준 처사는 이전 계획과 관련,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인지 알아보고 싶다.
학교를 개발지구로 옮기도록 해 놓고「버스」노선조차 제대로 넣어 주지 않아 교사와 학생들에게 등·하교 때마다 교통지옥을 실감케 하고 진입로 포장·상·하수도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아 통학에 지장을 주는 졸속 행정으로 학교를 인구에 맞춰 옮기도록 하겠다는 계획이 관계자들에게 납득될 수 있을 것인지 다시 한번 깊이 반성해 볼일이다.
친권자나 후견인이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도덕적으론 물론 법적 제재까지 모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비단 자연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지방 자치단체의 책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당국은 무모한 학교의 이전계획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후견자적인 입장에서 학교 설립자들이 흔쾌히 학교를 계획된 지역에 옮길 수 있도록 여건조성의 노력부터 다 해줄 것을 재삼 당부하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