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정년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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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죽음을 신이 예정한 인간조건이라고 한다면 정년제도는 사람이 만든 사회적 조건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일할 능력과 의사를 갖고 있어도 일단 정년이 되면 그는 일할 기회를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정년제도는 나이든 사람들에게 좌절과 소외감을 안겨 주는 철벽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년제도는 이상할 이 만큼 널리 채용되고 있다. 이렇게 정년제도는 숱한 문제점을 덮고도 남을 만한 장점과 불가피성을 지닌 것일까.
정년제도의 이론적 논거로는 보통 능률의 저하와 신진대사의 필요성이 지적되곤 한다. 능률의 저하라고 하면 노인과 젊은이의 일 처리 능력의 대비뿐만이 아니라 비용 대 효율이라는 측면까지를 포함한다.
예컨대 3배의 보수를 받는 노령 고참 직원이 젊은 신참 직원에 비해 3배의 능률을 올릴 수 있느냐는 식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오랜 경험에 의한 판단력이 중시되는 직무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비용 대 효율의 기계적인 대비는 고참 노령 직원에게 불리하게 작용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기계적인「능률 우선」과「경영합리화」란 사고방식에는 그 나름의 허점이 있다.
우선 능률의 기준이 문제다. 나이가 들어도 적어도 노쇠기에 접어들기까지는 작업능률·분석 및 판단력·계산능력 등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오랜 체험에서 얻어지는 원숙함은 젊은이들이 대체하기 어려운 면이다.
또 오랜 근무를 통한 그 직장에 대한 기여를 단순히 경영합리화나 능률 향상이란 이름으로 도외시해 버린다는 것은 사회정의란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능률」에 비하면 신진대사란 측면은 젊은 노동 인구가 매년 늘어나는 현실에 비추어 보다 설득력을 지닌 듯도 하다. 고용기회가 한정되어 있다고 가정하면, 젊은 노동인구를 흡수할 숨통이 요구되고 그것은 정년제도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용기회가 확대되어 가는 사회에 있어선 정년 제도가 새로운 고용기회 창출에 기여하는 폭은 극히 한정적이다.
우리나라의 정년제도는 대체로 선진 외국에 비해 그 연령이 너무 빠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공무원의 정년은 50∼60세로, 평균 55세다. 일반기업의 경우에도 사원의 경우에는 55세가 보통이다.
그에 비해 미국과 북구 제국의 공무원 정년은 70세, 서독 등 서구제국은 대개 65세까지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경우에 정년을 연기할 수도 있고 본인의 희망에 따라 자발적으로 앞당겨 퇴직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자발적 퇴직과 강제정년의 연령차는 3∼5년이 보통이며, 자발적 퇴직의 경우에는 강제 정년까지 받을 수 있는 급여의 상당 분을 지급한다.
우리나라에도 65세가 정년인 교원의 경우에는 60세가 넘어 외 직을 하면 정년까지 자기와 신참교원의 급여차액을 지급 받는 공로퇴직제도가 있다.
정년제도 자체를 없애기가 어렵다면 적어도 전반적인 정년연령의 상향조정과 함께 정년제도 운영에 탄력성을 부여하는 정도의 제도개혁이라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
당장 손쉽기로는 현재의 정년 연령을 자발 퇴직연령으로 하고, 그때부터 본인의 의사와 능력에 따라 5년 정도 공로 퇴직을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정년을 연장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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