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빈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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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헌혈을 희망하는 젊은 여성들의 3분의1이 빈혈이라는 최근 서울적십자 혈액원의 조사보고는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빈혈여성」이 구미 선진국에 비해 3배나 높다는 사실도 그렇거니와 그 이유가 엉뚱하게도 날씬해지기 위해 미용절식을 하기 때문이라는 데서 더욱 그렇다.
76년에 적십자 혈액원을 찾은 여성헌혈 희망자 1만6천2백53명을 대상으로 헌혈 적부검사를 한 결과 전체의 3분의1을 넘는 5천7백여 명이 빈혈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젊은 여성들 사이에 빈혈이 뜻밖에도 많은 것은 생리·임신·수유·편식 등 선천적 요인 외에 연약하고 가냘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이「먹는 것」보다는「안 먹는 것」에 더욱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미래의 어머니들이 피가 모자라 허약할진대 어찌 건강한 자녀와 건강한 사회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성은 창조하는 존재이고 또한 생산하는 존재이다. 또 그 사회의 태요 대들보다. 여성이 튼튼하고 건강하지 않고서는 그 사회가 활기에 찰리가 없다. 2세들의 건강도, 이 나라의 장래도 기대하기 어렵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여성의 건강이 강조되는 소이 연이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최근에 이르러 보건사업의 최우선 순위를 모자보건으로 정하고 모성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나라 젊은 여성의 3분의1이「빈혈여성」이라니 참으로 기가 차다. 그것도 순전히 미용을 위해서 잘 먹지 않기 때문이라니 쉽게 납득이 가질 않는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전체 여성들에게 공통된 것은 아닐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일부 젊은 여성들에게서 발견되는 기현상이리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도 하나의 풍조인 것만은 틀림없어 전 여성에 만연될 위험스런 기미마저 엿보인다.
단순히「날씬함」을 추구하느라고,「먹는 것」보다는「안 먹는 것」에 급급함으로써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사실은「미용절식」이라는 표현부터 잘못된 것이다. 어디까지나「미용식」인 것이다. 무턱대고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품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먹느냐가 미용식의「포인트」다.
또 소위「날씬함」은 결코 연약하고 가냘픈 몸매를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진 몸매를 날씬하다고 하는 것이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우리나라 임신부들의 유산 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높아지고 있는 현상을 모체의 건강관리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바 있는데 이것이 늘어나는「빈혈여성」에 연유하지 않나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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