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더러 1억불 가져왔다는데…김형욱씨 증언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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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프레이저」=박동선 씨를 아는가.
김형욱=알고있다.
「프레이저」=언제 그리고 어떤 경위로 그를 처음으로 만났는가.
김=당시의 김현철 주미대사로부터 박동선 씨가 대사 및 대통령의 친척을 사칭하고 다닌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때 마침 박동선 씨가 귀국을 했기에 그를 한국 중앙정보부(KCIA)로 잡아다가 하룻동안 심문을 했다.
그는 대사를 사칭한 적이 없고 박정희 대통령과는 같은 성씨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동선 씨를 석방하고 나서 수일 뒤에 정일권 국무총리(당시)한테서 저녁초대가 있어서 갔더니 박씨가 왔더라.
「프레이저」=박동선 씨를 심문할 때 총리한테서 무슨 연락이 있었는가.
김=석방 후에 자기가 아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 아니니 도와주라는 연락을 받았다.
「프레이저」=그날 저녁 식사 때와 그 뒤에 박동선 씨는 미국의회에 아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던가?
김=그렇다.
「프레이저」=KCIA를 위한 일을 논의한 것은?
김=그 뒤다. 역시 1966년인데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많으니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자청했지만 그때는 쓸모가 없었다.
「프레이저」=실제로 박동선 씨를 도운 것은?
김=1967년 한국대사관의 김용호 공사한테서 편지가 왔다. 내용은 박동선 씨가 「조지타운·클럽」운영자금이 모자라서 곤란하니 해외에 있는 한국외환 3백만「달러」를 박동선 씨의 은행에 장기 예치하여주면 그걸 담보로 자기가 사업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비서에게 주어서 예치하도록 조치했다.
「프레이저」=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 정부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 있던가?
김=알고 보니 그의 형이 내 친구이고 해서 순전히 개인적인 호의를 베푼 것이다. 그런 방법은 한국정부의 은행예치금에는 손실을 끼치지 않는다.
「프레이저」=외환은행에 부탁을 했는가?
김=그렇다. 그것이 불법이 아니었다. 나는 그 정도의 영향력은 행사하고 있었다.
「프레이저」=그밖에 망신과 박동선가의 관계를 상세히 설명하라.
김=그 뒤 박은 수차 나를 방문했다. 「클럽」운영자금이 모자란다고 전제하고 한국 돈으로 10만「달러」분이 있으니 그걸 「달러」로 바꾸어서 반출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는 「클럽」을 통해서 회원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겠다고 장담을 했다. 그때 월남전이 확대되고 있을 때인데 한국군은 한국 전쟁 때 썼던 낡은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박은 10만「달러」를 가지고가면 군수을 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한달에 걸쳐서 10만「달러」를 암시장에서 바꿔서 「파우치」편으로 이상호 공사에게 보냈다. 박한테서 10만「달러」를 잘 받았다는 편지가 왔다.
그 뒤 그는 나중에 비밀증언에서 이름을 밝힐 두 사람의 하원의원과 같이 나를 방문하여 이번에는 쌀 수입의 「브로커」로 자기를 지정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두 사람의 국회의원들도 박동선을 쌀 수입을 위한 「브로커」로 지정하면 한국이 많은 군원을 따도록 돕겠다고 거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달청장에게 이야기하여 박은 「브로커」가 됐고 1967∼68년 사이에 첫 쌀 거래가 성립됐다.
내가 한국중앙정보부장자리를 물러난 뒤에는 접촉이 없다가 1971년 나를 다시 찾아와서 쌀 수입에 문제가 생겼다고 호소했다. 그때 한국은 한발로 쌀을 한층 많이 수입할 처지라 쌀 수입은 큰 이권이 됐다.
강순태 씨가 청와대경호실장 박종규씨를 업고 쌀「브로커」자리를 뺏으려고 공작을 하여 박동선이 받을 「커미션」 20만「달러」를 가로챘다.
그때 박은 15내지 20명의 미 의원명단을 내게 제시했다. 나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당시) 에게 이야기를 해서 문제의 20만「달러」의 「커미션」이 박종규 씨를 통해서 이후락 씨에게 넘겨지고 다시 박동선 씨에게 돌아가게 했다. 15내지 20명의 의원명단은 내가 미국으로 떠나 기전에 소각해 버렸다.
미국에 온 뒤 박동선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수차 있었으나 거절했다. 준 돈을 대부분 착복한 것으로 나는 짐작한다.
「프레이저」=박동선 씨와 동행한 2명의 의원이 박씨를 도와주면 한국군 현대화 지원을 적극 돕겠다고 말했는가?
김=그렇다.
「프레이저」=김대중 납치 경위는?
김=사건 발생직후 일본으로 가서 과거의 부하한테서 내막을 들었다.
그 일을 지휘한 사람은 김재권 인데 그는 처음 지시를 받았을 때 반대했다. 6명의「팀 이 조직되어 김대중 씨를 미행하다가 73년8월1일 일본경시청에 의 사진을 찍해혔다.
그래서 세 사람은 철수하고 다른 세 사람이 가담됐다. 사진찍힌 세 사람 중 하나가 당시 「고오베」영사 이태희 씨다. 새「팀」의 한사람인 백철원은 사건이 너무 엄청나서 이호 대사에게 보고했다. 이호 대사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대사는 즉각 중단을 지시했다. 그러나 김재권은 엄중 지시라고 이 대사를 설득했다.
마침 김대중씨는 동향인 양일동 씨가 일본을 방문중 김대중 씨가 정한 장소에서 정치문제를 논의, 다음날 양일동 씨의 「호텔」로 저녁식사를 약속했다. 양일동 씨는 그런 사실을 김재권 씨에게 알려줬다. 그래서 납치「팀」이 양일동 씨의 옆방을 차지, 김대중 씨가 저녁 식 사후 나갈 때 납치하는데 성공했다.
「프레이저」=양일동 씨가 가담한 것인가?
김=그렇게 생각한다. 양일동 씨가 즉각 경찰에 신고했으면 될 것을 늦게 신고했다. 그리고 그가 김대중 씨와의 약속을 알리지 않았던들 납치「팀」은 몰랐을 것이다.
「굿링」=73년 출국 때 원하는 것은 모두 지참했는가?
김=가족은 20일전에 먼저 출국시키고 나는 대만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러 출국하여 미국으로 갔다.
「더윈스키」의원=박보희 씨는 어떻게 알게됐는가?
김=양유찬 대사와 함께 와서 『자유「아시아」방송』의 허가와「리틀·에인절스」의 출국허가를 부탁했었다.
「더윈스키」=그때 박보희 씨는 KCIA요원이었는가?
김=아니다. 처음 만난 것이 1964년인데 『자유「아시아」방송』설치가 방문 목적이었다. 문선명씨는 미국에 올 때까지 이름도 몰랐다.
「더윈스키」=문선명씨와 한국정부의 관계는?
김=나는 그를 전혀 모른다.
「더윈스키」=통일교 활동이 한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김=갖가지 「스캔들」때문에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워 때로는 일본사람이라고 자처한다 (이때 장내폭소). 박보희 씨는 나의 NYT 「인터뷰」기사를 보고 협박성명을 이렇게 내고 있다(김형욱 씨는 박보희 씨의 광고를 제시했다). 그가 진짜 반공을 한다면 나를 지지해야지. 남북대화이후 이후락 씨는 반공을 탄압했다. (자신의 저서를 들어 보이며) 이 책은 내가 쓴 것인데 『북괴』라는 표현때문에 발매금지되어 북한이나 김일성 집단 등으로 표현을 바꿔서 발간했다. 한국의 교과서에서도 1년 반 동안 반공은 자취를 감추었다.
「해밀턴」=박동선 씨가 골칫거리가 되어 김한조 씨로 바꾸려고 했는가?
김=그렇게 안다.
「해밀턴」=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았나?
김=1975년 1월과 1976년 12윌 김한조 씨가 NYT와 「이브닝·스타」지에 현 정부지도자를 극찬하는 글을 썼기에 흥미가 있어서 조사했다. 한국으로부터 75년 7월과9월 두 번에 걸쳐서 「파우치」편으로 30만「달러」씩 도합 60만「달러」를 김한조 씨에게 보냈다. 그리고 본부의 양두원씨, 한국대사관의 요원과 김한조 씨간에 3각 접촉이 있었다.
「해밀턴」=용도는 「로비」활동을 위한 것인가?
김=10만「달러」를 「로비」활동을 위해서 쓰고 나머지는 착복한 것으로 짐작한다.
「해밀턴」=10만「달러」를 의회에서 썼는가?
김=상세한 것은 모르겠다.
「해링턴」=73년 어떤 자격으로 미국에 왔나?
김=일반여권으로 왔다.
「해링턴」=미국에서의 활동은?
김=조용히 살고 있다.
「해링턴」=미국에 와서 미CIA와의 접촉은?
김=처음 와서는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제는 그들도 대부분 퇴직해서 안 만난다.
「해링턴」=그들과의 마지막 접촉은?
김=75년이다.
「굿링」=생활비는 어떻게 조달하고 있는가?
김=사업활동은 없고 여러 가지 방도로 조달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1억「달러」를 가지고 나왔다고 주장하지만 그때 한국의 외화보유고가 3천만「달러」를 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암시장에서 「달러」사기가 힘들다. 그래서 나는 미국에 도착한 후에 15만「달러」를 한국에서 반출하는데 2년이 걸렸다. 내가 만약 1억「달러」를 반출할 수 있는 처지였다면 출국 전에 벌써 체포됐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집은 20만「달러」짜리지만 공무원들도 그만한 집에서 산다. 【워싱턴=김영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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