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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고교생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데 있으니 촌음을 아껴 열심히 면학에 힘써야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쳐 학생들의 정상적인 발육·성장을 저해하고 나아가 공부에 대한싫증마저 일으키게 할만큼 우리나라 대다수 고교들이 과중한 정규수업과 과외수업을 강요하고 있다는 논의가 일고 있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과도한 수업과 무거운 책가방으로부터 학생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논의는 이미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또 중·고교의 무시험진학제도 자체가 이 때문에 실시되고 있는데도 결과는 도리어 과중한 과외수업과 특별지도 수업의 일반화로 귀결되었으니 모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근자 고교상급반학생들의 일과는 너무나 빡빡하게 짜여져 있어 잠시도 긴장을 풀거나 휴식을 취할 여유조차 거의 없는 딱한 형편이다.
학생들 자신의 고달픔은 말할 것도 없고, 옆에서 지켜보고 뒷바라지하는 가족들마저 조바심이 나고 애간장이 탈 정도이니, 수험준비교육만능주의에서 빚어진 이같은 빗나간 사태는 하루 빨리 시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대학입시준비가 중요한 것이기는 하나 학교의 정규기업·보충수업·과외수업을 합쳐 하루 12∼13시간씩 일률적인 공부를 시킨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학생들 스스로 「합숙수업」이라는 말을 할 정도의 이 같은 과중한 수업에서 오는 부작용과 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건강을 해치고 신체발육에 큰 지장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보통 아침 6시엔 집을 나서야한다니 아침밥을 거르거나 먹는 둥 마는 둥 하기 일쑤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고는 다시 「교실에서의 긴장과 불안」의 긴 시간을 보내고 학교수업 뒤의 학원강의를 듣고 파김치가 되어 밤 10시가 지나서야 귀가하게 된다니 이러고도 아무 탈없이 성장한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 아니겠는가.
건강 못지 않은 악영향은 학생들을 정신적·정서적으로 불안·불건전하게 만드는 일들이다. 과도한 수업은 육체적인 피로뿐 아니라 감수성이 예민하고 다정다감한 학생들에게 계속적인 심리적 압박감과 긴장감을 주어 정상적인 인격형성에도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런 것 외에도 학생들의 학습의욕과 창의성을 저하·손상시키게된다. 시험준비를 위한 지나친 주입식·암기식 수업은 공부에 염증을 내게 하고 기본적 사고능력을 기르는 「지적 훈련」과 독창성을 함양하는데는 결정적인 저해작용을 하기 마련일 것이다.
과중한 수업에서 오는 이같은 폐단을 바로잡고 교육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적정수업시간 결정과 엄수가 필요하다. 적정수업시간은 어디까지나 교육학적·심리학적·생리학적으로 균형 잡힌 지도방침이 세워져야할 것이다.
주의작용의 계속시간·교육과목의 적당한 배당과 휴식시간을 고려하여 편제돼야 학습능률이 올라간다는 것은 비단 교육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과중수업에 따른 이같은 비교육적인 폐단이 시정되지 못할 뿐 아니라 더욱 악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대학을 꼭 나와야하고, 더욱이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빗나간 교육풍토와 사회분위기, 입시공부위주의 교과운용, 수업 제1주의, 학교간의 경쟁심, 일부교사들의 부수입원 확보, 학생들의 소질과 능력을 고려치 않은 일부학부모들의 허영심과 극성 등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큰 것은 고교평준화에 따른 학습지진아의 양산, 평균학력의 저하, 우열반 해체와 혼성반 편성으로 인한 학습지도 기준실정의 곤란, 모든 학교의 자율성상실 등이다.
고교생들의 과중수업의 원인과 이에 따른 갖가지 폐단을 막는 지름길은 소신 있고 경험 있는 교직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을 허용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임을 재인식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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