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먼저 보내고 73년 도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김형욱씨는 73년2월에 도미했다. 그 당시 김씨의 도미에 관해 항간에서는 유정회 국회의원을 바랐으나 전망이 흐리자 갔다고들 했다. 김씨는 자신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 아들의 신병치료를 핑계로 가족을 전부 출국시켰으며 자신은 국회의원 때 가졌던 외교관여권으로 자유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갔다.
그는 미국에서 체류기간이 길어지자 자신이 정보부장을 물러난 뒤 저술한 『대지의 가교』와 『공산주의의 활동과 실제』라는 두 권의 책을 영역 출판한 뒤 귀국하겠다고 했었다.
74년5월말 정일권 국회의장이 방미했을 때 로스앤젤레스에서 정 의장 일행과 만났으며 그동안 여러 사람들이 그의 귀국을 종용했으나 거절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뉴욕」근처 「뉴저지」주에 20만 「달러」짜리 저택을 사서 살며 지금까지 공개활동은 피해왔다.
외출할 때는 비서와 경호원을 대동한다. 일체의 기자접촉을 꺼려 미국의 「텔리비젼」방송들이 그의 저택외부에서 망원「렌즈」로 그의 거동을 잡고 항공사진으로 그의 저택을 찍어 보도한 일도 있다.
문명자 이용운씨 등과는 자주 접촉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형욱씨는 지난 63년7월부터 69년10월까지 만6년3개월 동안 제4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71년 공화당전국구로 8대 국회에 들어갔다가 유신이후 9대의원은 되지 못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