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장하준 칼럼

규제를 다시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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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

1980년대 소위 ‘신자유주의’가 발흥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규제완화의 바람이 불었다. 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고 경기침체와 인플레가 병존하는 소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이 일어나면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들어섰던 ‘혼합 경제’ 체제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특히 정부가 각종 규제를 통해 기업활동을 제약해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규제완화가 정책의 초점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80년대 전두환 정부 때부터 규제완화가 서서히 시작되었고,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 ‘박정희식’ 국가개입주의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내려지면서 규제완화가 국가적 과제로 여겨지게 되었다. 지금 박근혜 정부도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의 활력을 살리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규제완화론에 깔려 있는 생각은 기업들이 최대한 자유를 가질 때 가장 효율적이고 혁신적이 될 수 있고, 따라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제약하면 효율성과 혁신이 떨어져 경제에 해가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그런 면이 있다. 그러나 규제가 경제에서 하는 역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첫째, 기업 이윤을 깎아먹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규제들이 있다. 최근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부각되고 있는 각종 안전기준들이 그 좋은 예다. 선박의 과적에 관한 규제, 직업운전자들의 근무 시간에 대한 규제, 화재에 대비한 비상구 등 대피시설에 대한 규제들은 기업에 부담이 되더라도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규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시장들이 있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는 소비자가 써보면 제품의 질을 상당 부분 파악할 수 있지만 의약품 같은 제품들은 그 안전성이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들을 소비자가 파악하기가 힘들다. 이런 시장에서는 정부가 제품의 질에 대한 규제를 해 소비자가 의심하지 않고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존재하기 힘들다.

 셋째, 기업들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기업활동에 도움을 주는 규제도 많다. 60~80년대 우리 정부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자동차 등의 산업에 대한 진입을 규제했다. 이런 규제 덕분에 그 산업에 투자한 기업들은 일정 수준의 이윤을 확보했고, 그것을 재투자해 빨리 생산 규모를 늘리고, 그를 통해 단가를 낮추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조적으로, 대만은 자동차 산업에 대한 진입 규제를 하지 않아 열두세 개의 ‘잔챙이’ 기업이 난립하게 함으로써 자동차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넷째, 기업들이 단체로 ‘제살 깎아먹기’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기업활동을 돕는 규제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아동노동은 어린이들의 발육과 교육을 저해해 미래의 노동력의 질을 떨어뜨리므로 모든 기업에 해로운 것이지만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는 먼저 나서서 아동노동을 삼갈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어린이들을 고용하는 기업과의 경쟁에서 도태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19세기 유럽에서 지각 있는 자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아동노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적인 예로는, 환경에 관한 규제가 그런 예다. 환경이 파괴되면 모든 기업이 존립에 위협을 받는다. 그러나 개별 기업들 보고 알아서 환경기준을 정해 생산기술을 택하라고 하면, 경쟁적으로 낮은 기준을 정할 것이고, 환경이 파괴된다.

 경제에 도움이 되는 규제가 많다는 것은 성장률 통계를 보아도 알 수 있다. 규제가 많고 세율이 높던 50년대와 60년대에 선진국 경제는 1인당 기준으로 연평균 3.2% 성장했다. 규제완화와 감세로 특징 지어지는 그 후 30년간 성장률은 1.8%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규제가 훨씬 많던 ‘개발연대’에 1인당 6%대였던 성장률이 본격적으로 규제완화가 시작된 90년대 말 이후 3% 부근으로 반 토막이 났다. 성장 저하가 모두 규제완화 때문만은 아니지만 규제가 무조건 경제에 해롭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규제는 기업활동, 그리고 나아가서 경제성장에 나쁘다는 의식을 버려야 한다. 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기업들이 경제 전체를 위해 필요한 규제도 자기들 눈앞의 이익에 어긋나면 없애 달라고 아우성을 치게 된다. 그런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팽배해 있기 때문에 규제를 어긴 기업들과 규제를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정부 관리들이 별 죄책감도 못 느껴 온 것이다.

 맹목적인 규제완화론을 버리고 규제에 대한 균형 있는 인식을 확립하지 않으면 국민의 안전, 건강, 그리고 환경뿐 아니라 경제의 활력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