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속「앙팡·테리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아버지는 똑똑한 자식을 더 사랑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못난 자식을 더 사랑한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은 깊고 크다는 예증으로 흔히 쓰이는 말이다. 요새는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즉물적이다. 어머니는 예쁜 딸을 더 아낀다. 공부 잘하는 아들을 더 애지중지한다. 학교에서나 이웃에서나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는 아이는 그저 어머니의 노리개일 뿐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아낀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공부를 못하고, 잘생기지 못한 아이는 구박동이가 된다. 자연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동생, 또는 형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흔히 어린「탤런트」나 가수에게 매달러 사는 어머니를 본다. 딸이 하나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어머니를 호강시켜 주고, 좌절됐던 호화로운 꿈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자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어머니가 딸에게 보여주는 것은 즉물적인 것이다. 참다운 사랑은 아니다.
그나마도 받지 못하고 있는 다른 형제들에게는 어머니를 원망하고 「스타」동생을 시기할 권리도 없다. 돈을 벌어들이는 동생을 적대시하여 이로운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제의 정애도, 모자의 애정도 인물화 되어버린 오늘이다. 효도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 돈으로 입증이 되어야 한다. 자식이 출세를 하면 효를 한다고 보는 오늘의 부모들이다.
더욱이 부모와 자식들 사이에 애정을 확인해 가는 시간이 전혀 없다는 데서 여러 가지의 비극이 생긴다.
지난10일 시내에서 대낮에 10세의 어린이가 피살된 사건이 있었다. 그때 누구 나가 강도의 소행으로 봤다. 그게 엉뚱하게도 바로 피살된 어린이의 두 살위 형이 범인임이 밝혀졌다.
처음부터 동생을 죽일 마음은 없었던 모양이다. 떼밀려 쓰러진 동생이 실신한 것을 보고 강도의 소행처럼 위장하려고 죽였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이런 끔찍한 꾀를 12세 어린이가 어떻게 순간적으로 꾸며 낼 수 있었을까? 속악한 만화책들의 탓인지, 아니면 살인극과 폭력이 난무하는 「텔레비전」탓인지, 혹은 또 매일같이 범죄보도로 메워지는 신문의 덕분일까.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어머니의 편애를 받은 동생에 대한 시기심에서였다는 어린이의 고백이다.
어머니에게는 편애의 잘못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정의 표현이 모자랐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어느 가정에나 끔찍스런 경종이 되는 사건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