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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박준규 전 의원 89세로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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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국회의장을 지내고 대구 중구와 동구, 달성군 등에서 7선, 서울 성동구까지 포함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만 9선을 역임한 박준규(사진) 전 의원이 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89세.

 대구 달성 출신인 고인은 1948년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창설 당시 외무부 사무관으로 유석(維石) 조병옥 박사를 도운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고향에서 두 차례 낙선한 뒤 2전3기 끝에 5대 총선 때 야당이던 민주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5·16 이후 공화당으로 옮겨 78년 10대 총선까지 내리 6선을 하는 동안 정책위의장과 당 의장서리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5공 정부가 그를 정치활동 규제자로 묶는 바람에 한동안 2선으로 물러나 있다가 87년 13대 대선 때 경북고 후배인 노태우 후보의 요청을 받고 민정당에 참여하면서 복귀했다.

 88년엔 민정당 대표위원도 지냈다. 하지만 93년 김영삼 정부가 추진한 재산공개 파문으로 여권으로부터 국회의장직 사퇴압력을 받으면서 민자당과 결별했다. 당시 격화소양(隔靴搔痒·신을 신은 채 가려운 발바닥을 긁어보아야 아무 효과가 없다)이라는 말로 김 전 대통령과 그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95년엔 자민련 후보로 출마해 15대 국회에 9번째로 진출했다. 헌정사상 9선 의원은 그와 김영삼(YS) 전 대통령, 김종필(JP) 전 자민련 총재뿐이다. YS·JP는 비례대표로 당선된 적이 있어 ‘지역구 9선 의원’은 고인이 유일하다. 특히 지역구 9선 의원 기록은 현재 기네스북 한국판에도 올라 있다. 선거판세를 잘 읽어 막판에는 필요한 표를 계산하고, 적절한 득표전략을 세우는 ‘선거의 달인’으로 불렸다.

 13~14대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15대 국회에서도 DJP공동정부의 자민련 몫으로 국회의장을 맡았다.

 2000년 자민련을 탈당해 국회의장이 당적을 버리는 첫 사례를 남겼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고인에 대해 “타협을 중시하고 정치를 아는 큰 정치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유족으론 부인 조동원 여사와 아들 종보씨, 딸 종현·종란·종순씨가 있다. 빈소는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VIP실), 발인은 7일 오전 8시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02-798-1421.

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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